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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어거스틴 『고백록』 리뷰

리덴 가이드 2026. 9. 2. 04:00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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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0년 전 사람이 먼저 앓았던 질문

    가나안 성도라는 말은 최근에 생긴 표현이지만, 방황하는 신앙인이라는 존재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속 그 생각을 했다. 4세기 사람이 쓴 자서전을 읽는데, 마치 요즘 상담실에서 들을 법한 이야기가 그대로 나온다. 방탕, 중독, 어머니와의 갈등, 신앙과 이성 사이의 오랜 씨름. 어거스틴은 우리보다 1600년 먼저 이 모든 걸 앓았다.

    『고백록』은 흔히 기독교 고전의 정점처럼 취급되지만, 나는 이 책을 신학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지독하게 정직한 회고록으로 먼저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어떤 자리에서 쓰였나

    어거스틴은 회심하고 주교가 된 지 한참 뒤, 마흔 중반의 나이에 이 책을 썼다. 젊은 시절 그는 방탕한 생활을 했고, 마니교라는 이단 사상에 빠졌고, 오랫동안 정부와 살면서 혼외 자식을 두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이 모든 걸 굳이 글로 남겼을까. 단순히 참회의 기록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이 책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형식으로 썼다. 그러니까 독자를 향해 쓴 게 아니라, 신을 향해 쓴 글을 우리가 옆에서 엿듣는 구조다.

    이 형식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변명하거나 정당화하려는 긴장이 훨씬 덜하다. 이미 하나님이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왜 숨기겠는가.

    "내 마음은 쉼을 얻을 때까지 쉬지 못하나이다"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이 문장은 아마 기독교 고전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일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예전엔 그냥 아름다운 수사로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이게 수사가 아니라 어거스틴의 실제 인생 궤적을 압축한 진단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쾌락에서 쉼을 찾으려 했고, 지적 성취에서 찾으려 했고, 철학에서 찾으려 했다. 매번 실패했다. 이 실패의 목록이 이 책 전반부를 채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늘날 신앙을 떠난 사람들이 찾아다니는 대체재들, 성공이든 자기계발이든 다른 종교적 체험이든, 그 목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거스틴은 그 모든 걸 다 시도해보고, 결국 그중 어느 것도 자기 존재의 갈증을 채우지 못한다는 걸 인정한 사람이다.

    어머니 모니카라는 그림자

    이 책에서 의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다. 그녀는 아들의 회심을 위해 수십 년간 눈물로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신앙을 존경하면서도, 동시에 그 신앙이 자신에게 부담이 되었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

    나는 이 관계가 흥미로웠다. 신앙의 대물림이라는 게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동반하는지, 이 책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 증언하고 있다. 부모의 간절한 신앙이 자녀에게는 사랑이자 동시에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어거스틴이 방탕하게 살던 시절, 그는 어머니의 기도를 피해 도망치듯 이탈리아로 떠난다. 신앙을 물려주려는 사람과 그걸 밀어내려는 사람 사이의 긴장, 이건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이야기다.

    회심은 한 순간이었을까

    흔히 알려진 대로 어거스틴의 회심은 정원에서 아이의 목소리, "집어서 읽으라"는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치는 극적인 장면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책을 자세히 읽으면, 그 순간은 오랜 지적, 정서적 씨름의 마지막 방점이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몇 년 동안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공부했고,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으며 서서히 마음이 움직였다. 극적인 순간 뒤에는 지루하고 긴 준비 과정이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오늘날 신앙을 재정립하려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극적인 회심의 순간만을 진짜 신앙의 증거로 여긴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회심조차도 그런 순간 하나로 완성된 게 아니었다. 그 앞에 놓인 지루한 방황과 질문의 시간이 없었다면, 정원에서의 그 순간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

    책 후반부, 11권부터는 갑자기 톤이 바뀐다. 개인적 고백에서 벗어나 시간과 창조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넘어간다.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 당황했다. 왜 자서전이 갑자기 형이상학 논문이 되는 걸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어거스틴의 논리 안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인생이 놓인 시간과 존재의 구조 자체를 신학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개인적 고백이 결국 우주적 질문으로 확장되는 구조. 이건 신앙이라는 게 결국 나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빛과 그늘

    이 책의 빛은 그 정직함의 밀도에 있다. 1600년 전 사람이 자기 성욕, 도둑질, 허영, 지적 오만을 이렇게까지 낱낱이 드러낸 텍스트는 흔치 않다. 신앙의 위인전이 아니라 실패담의 축적 위에 세워진 신학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힘이 있다.

    그늘도 있다. 후반부의 철학적 사유는 현대 독자에게 상당히 진입장벽이 높다. 그리고 이 책 전체에 깔린 여성에 대한 시선, 특히 젊은 시절 함께 살았던 정부를 다루는 방식은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보면 불편한 지점이 있다. 그녀는 이 책 안에서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어거스틴이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고백하면서도, 그 관계 안에서 자신이 준 상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심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고전을 읽을 때 이런 시대적 한계를 함께 인식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이후 읽을 책

    이 책 다음으로는 십자가의 성 요한 『영혼의 어두운 밤』을 함께 읽으면 좋다. 어거스틴의 회심이 지적 씨름의 결실이었다면, 요한은 회심 이후에도 계속되는 어둠을 다룬다. 또 팀 켈러의 『답이 되는 기독교』도 권하고 싶다. 어거스틴이 고백의 형식으로 신앙을 변증했다면, 켈러는 오늘의 언어로 비슷한 여정을 다시 시도한다.

    닫는 말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신앙을 잃었다가 되찾는 사람들의 여정이 얼마나 오래된 이야기인지 새삼 느꼈다. 어거스틴은 완벽한 신앙인의 모델이 아니라, 끝까지 갈증을 인정한 사람이었다. 당신이 지금 그 갈증 한복판에 있다면,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 하나는 이 책이 말해줄 것 같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십자가의 성 요한 『영혼의 어두운 밤』, 팀 켈러 『답이 되는 기독교』,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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