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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리뷰

리덴 가이드 2026. 8. 30. 04:00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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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라는 꿈에서 깨어난 자리에서

    가나안 성도가 된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의외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혼자 있는 게 편해요." 처음엔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들었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그 말 뒤에 다른 말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이 편해서가 아니라, 함께 있는 게 너무 지쳤다는 뜻이더라.

    나도 병원 채플에서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침상 옆에서 손을 잡고 기도해달라던 사람이, 정작 자기 교회 이야기가 나오면 표정이 굳었다. 공동체 안에서 받은 상처가 병상까지 따라온 거다. 그런 사람 앞에서 "신도의 공동생활"이라는 제목의 책을 펼치는 건 솔직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 책, 생각보다 훨씬 정직하다.

    이 책은 어떤 자리에서 쓰였나

    디트리히 본회퍼가 이 책을 쓴 건 1938년, 나치 치하 독일에서였다. 그는 핑켄발데라는 곳에서 지하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국가교회에 속하지 않은 젊은 목회자 후보생들과 함께 살면서 목회를 가르치는 자리였는데, 그 공동체는 이미 게슈타포의 감시 대상이었고, 결국 폐쇄됐다. 본회퍼는 그 짧은 공동생활의 경험을 정리해서 이 얇은 책 한 권을 남겼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이상적인 공동체 이론서가 아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자리에서, 실제로 매일 아침 함께 밥 먹고 성경 읽고 부딪히며 살아본 사람의 기록이다. 그게 이 책을 다른 신앙 공동체 책들과 구별시키는 지점인 것 같다.

    "소원 꿈"이라는 말이 나를 붙잡았다

    책 초반에 나오는 개념 하나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본회퍼는 이걸 "소원 꿈(Wunschtraum)"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공동체에 대해 갖고 있는 이상적인 그림, 그러니까 서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상처 주지 않고 늘 은혜롭기만 한 모임에 대한 환상을 뜻하는 말이다.

    본회퍼는 이 소원 꿈이야말로 진짜 공동체를 파괴하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처음엔 이 말이 좀 냉정하게 느껴졌는데,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 공동체에 가장 깊이 실망한 사람들은, 대개 그 공동체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었다. 기대가 클수록 배신감도 컸다.

    본회퍼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공동체는 우리의 이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에 근거해야 한다고. 다시 말해, 내가 원하는 관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관계를 발견하는 거라는 얘기다. 이 말은 은혜롭게 들릴 수도 있고, 반대로 "그러니까 실망해도 참으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나는 솔직히 두 가지 다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묵과 말,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혼자 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본회퍼는 혼자 있을 수 없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 있을 자격이 없고, 공동체 안에 있지 못하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가나안 성도라는 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제도를 떠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혼자 있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오래 혼자 있어서 다시 함께 있는 법을 잊어버린 경우가 많다. 본회퍼가 말하는 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게 아니라, 둘 다를 배워야 진짜 신앙이 자란다는 뜻인 것 같다.

    식사 전 기도, 함께 부르는 시편, 침묵 속의 성경 묵상 같은 일상의 리듬을 그는 굉장히 구체적으로 다룬다. 신학적인 담론보다 이런 생활의 결이 더 오래 남았다.

    고백이라는 위험한 행위

    또 하나, 이 책이 대담하다고 느낀 지점은 '고백'을 다루는 방식이다. 본회퍼는 죄를 혼자 짊어지고 있는 사람은 완전히 혼자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도 자기 죄를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지 않으면 여전히 경건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는 거라는 얘기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나는 불편했다. 내 경험에서 보면, 한국 교회에서 '고백'이 오용된 사례를 너무 많이 봐서다. 목회자 앞에서, 혹은 소그룹 안에서 강요된 고백이 사람을 통제하는 도구가 되는 걸 여러 번 봤다. 본회퍼가 말하는 고백이 그런 게 아니라는 건 문맥상 분명한데도, 이 개념이 제도 안에서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나는 계속 생각하게 됐다.

    빛과 그늘

    이 책의 빛은 분명하다. 공동체를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 본회퍼는 상처와 실망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그럼에도 함께 사는 삶이 신앙의 본질이라는 걸 놓지 않는다. 이상주의도 냉소주의도 아닌 자리에 서 있다는 게 이 책의 힘인 것 같다.

    그늘도 분명히 있다. 이 책은 자발적으로 모인, 신학적으로 동질적인, 규율 있는 소수 공동체를 전제로 쓰였다. 오늘날 개인주의가 극심하고 교회 안에 권력 불균형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본회퍼가 말하는 '함께함'을 그대로 적용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순종과 규율을 강조하는 대목은, 목회자 권위주의를 이미 경험한 사람에게는 다르게 읽힐 여지가 있다. 이 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이 책이 쓰인 자리와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다르다는 걸 계속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후 읽을 책

    이 책을 읽고 나면 본회퍼의 다른 책 『나를 따르라』로 넘어가길 권한다.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구분하는 그의 사유가 이 책의 공동체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또 오스 기니스의 『소명』도 함께 읽으면 좋다. 개인의 부르심과 공동체적 삶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다른 각도에서 다루기 때문이다.

    닫는 말

    나는 여전히 공동체라는 단어 앞에서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공동체를 두려워하는 것과 공동체의 소원 꿈에서 깨어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거였다. 당신이 지금 혼자라면, 그건 어쩌면 실패가 아니라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의 자리일 수도 있다. 나도 아직 그 답은 모르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디트리히 본회퍼 『나를 따르라』, 오스 기니스 『소명』, 헨리 나우웬 『탕자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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