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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 루이스 『헤아려 본 슬픔』 리뷰

리덴 가이드 2026. 8. 31. 04:00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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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증가가 무너진 자리에서 나온 책

    C.S. 루이스는 변증가였다. 『순전한 기독교』에서 그는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거의 흔들림 없이 신앙을 설명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문장이 끊기고, 논증이 무너지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하나님을 향해 거의 원망에 가까운 말을 쏟아낸다. 같은 사람이 쓴 책이 맞나 싶을 정도다.

    나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이 책을 여러 번 추천했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 자녀를 먼저 보낸 사람에게. 그런데 추천할 때마다 조심스러웠던 건, 이 책이 위로의 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라서, 어설프게 건네면 오히려 상처를 건드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어떤 자리에서 쓰였나

    루이스는 나이 예순에 조이 데이빗먼이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시한부 암 환자였던 그녀와의 결혼은 처음엔 서류상의 배려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진짜 사랑이 됐다. 그리고 결혼 4년 만에 조이는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그 직후, 루이스가 슬픔을 견디기 위해 손에 잡히는 노트에 아무렇게나 써 내려간 기록이다.

    처음엔 출판할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초판은 가명으로 나왔다. 자기 이름을 걸고 내놓기엔 너무 날것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 날것의 감각이 이 책을 지금까지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신앙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

    이 책에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문장은 초반부에 나온다. 루이스는 하나님이 없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문을 쾅 닫고 안에서 빗장을 지르는 존재처럼 느껴진다고 쓴다.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는 그 침묵을, 그는 신학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고 쓴다.

    나는 이 대목에서 한참 멈췄다. 우리는 보통 신앙이 슬픔을 다스리는 도구라고 배운다. 하나님을 믿으면 슬픔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도 견딜 만해진다고. 그런데 루이스는 그 반대의 경험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신앙이 있어도 슬픔은 슬픔 그대로 남는다는 것, 오히려 신앙 때문에 그 슬픔이 더 복잡해질 수도 있다는 것.

    이건 위로의 언어가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정직함이 위로가 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슬픔은 감정이 아니라 과정이다

    루이스는 이 책에서 슬픔을 하나의 감정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슬픔이 두려움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슬픔이 마치 술에 취한 것 같은 감각이라고도 쓴다. 계속 변한다. 처음엔 마비된 것 같다가, 다음엔 화가 나다가, 그다음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자신에게 놀란다.

    이 부분은 사실 신학보다 심리학에 더 가깝게 읽힌다. 그런데 나는 이게 오히려 신앙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슬픔에 대해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다. "이제 그만 슬퍼하고 소망을 붙잡으세요" 같은 말. 루이스는 그 반대로 슬픔 안에 계속 머무른다. 답을 내리지 않고, 그 과정을 그대로 기록한다.

    죽은 사람의 이미지와 실제 사람

    책 후반부로 가면서 루이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이에 대한 자기 기억이 점점 자신이 만든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것이다. 진짜 조이가 아니라, 자신이 그리워하고 싶은 방식으로 편집된 조이. 그는 이 사실을 두려워한다. 슬픔이 오히려 죽은 사람을 두 번 잃게 만들 수도 있다는 통찰이다.

    이건 신앙과도 연결된다. 루이스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편하게 만들어낸 하나님의 이미지일 수 있다는 것. 슬픔이 그 우상을 깨뜨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고통이 우리를 더 정직한 신앙으로 밀어붙이는 순간이 있다는 얘긴데, 이 말은 쉽게 하기엔 무겁고, 그런데도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빛과 그늘

    이 책의 가장 큰 빛은 정직함이다. 신앙 안에서도 의심하고, 원망하고,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의 최초의 대중적인 신앙 서적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특히 슬픔을 신학적으로 봉합하지 않고 그대로 열어둔 결말은, 오히려 슬픔을 겪고 있는 독자에게 "당신만 이상한 게 아니다"라는 안도감을 준다.

    그늘도 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루이스 개인의 애도 기록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어느 정도 신앙적 회복의 결로 마무리되는데, 이 회복이 모든 상실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애도의 속도와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이 책의 흐름을 '정답 경로'처럼 따라야 한다고 느끼면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지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여정이라는 걸 기억하고 읽어야 할 것 같다.

    이후 읽을 책

    이 책 다음으로는 필립 얀시의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까』를 권하고 싶다. 루이스가 개인적 애도의 언어로 슬픔을 다뤘다면, 얀시는 조금 더 넓은 질문, 왜 신앙인에게도 고통이 반복되는가를 다룬다. 또 루이스 자신의 『고통의 문제』도 함께 읽으면 좋다. 이 책이 슬픔 '안에서' 쓴 기록이라면, 『고통의 문제』는 슬픔을 겪기 '전에' 쓴 이론이다. 두 책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같은 사람 안에서 벌어진 신학과 경험의 간극이 보인다.

    닫는 말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루이스가 이 책을 가명으로 냈다는 사실이 뭘 말해주는 걸까. 어쩌면 그는 자기 신앙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기가 여전히 두려웠던 게 아닐까. 그런데 결국 이 책은 그의 이름으로 다시 출간됐다. 무너진 채로도 계속 살아가는 신앙이 있다는 걸, 그 자체로 증언하듯이.


    함께 읽으면 좋은 책: C.S. 루이스 『고통의 문제』, 필립 얀시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까』, 팀 켈러 『고통에 답하다』

     

    태그: C.S.루이스, 헤아려본슬픔, 신정론, 상실과애도, 가나안성도, 기독교고전, 신앙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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