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타로, 사주, 팔자, 관상... 왜 사람들은 점을 볼까? – 불안한 미래, 나의 운명을 알기 위해서... 그러나 거기에 답은 없습니다 / 복음이 참된 해답을 줍니다
리덴 가이드 2025. 4. 25. 12:59목차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지도나 네비게이션을 찾습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길에서 갈피를 못 잡을 때는 무엇을 찾게 될까요?
누군가는 조언을 구하고, 누군가는 스스로의 판단을 믿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점(占)을 보러 갑니다.
"이 남자가 날 행복하게 해줄까요?"
"이 직업이 나에게 맞을까요?"
"이 집을 사는게 맞을까요?"
교회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점보러 가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예전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점을 더 많이 본다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남성, 여성 상관없이, 점을 본다는 행동에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가 녹아 있습니다.
점을 보는 이유 – 그 깊은 내면의 불안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점집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정작 큰 어려움에 처한 이들보다,
겉보기에 잘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사회적 지위도 있어 보이는 이들이
왜 그처럼 은밀한 공간에서 미래를 점쳐보려는 것일까요?
그들에게도 말 못 할 불안이 있는 겁니다.
"이대로 괜찮을까?",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나를 계속 인정해줄까?"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사람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불안을 느끼며,
그 불안을 달래기 위해 외부의 신호나 징조에 집착한다고요.
점은 바로 그 욕망의 대상입니다.
‘어떻게든 내 미래를 알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점집 문을 열게 하는 거죠.
여성과 점 – 문화가 만든 불안
물론 실제로는 여성들이 점을 더 많이 본다는 현상이 있긴 합니다.
이는 여성의 성격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성은 오랫동안 결정권과 발언권에서 소외되어 왔습니다.
남편의 운명, 자녀의 진로, 가정의 경제 상황을 고민하면서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위치에 놓이지 못했던 시대가 길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불안 속에 살았고,
그 불안을 해소해줄 ‘무언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무언가’가 바로 점이었습니다.
여성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사회적 관용이 있었던 반면,
남성에게는 “신사 체면에 점이라니”라는 수치심 코드가 있었습니다.
이중 잣대와 남존여비의 잔재가 점을 보러 다니는 여성의 행동을 정당화한 셈입니다.
문제는 점이 아니라 인생관의 부재
하지만 이 글에서 진짜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점을 보려는 이유는 결국,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키고, 선택의 책임을 떠넘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스스로 직면하지 못할 때,
사람은 그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고 싶어집니다.
"팔자가 사나워서 그렇지",
"운수가 나빠 그런 거야."
이런 말들이 입에 익어 있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 안의 실패와 상처를 회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명확한 인생관 없이 사는 사람일수록 사소한 불안에도 쉽게 무너진다는 점입니다.
삶의 뚜렷한 목표와 방향을 갖고 있다면,
조금의 실패쯤은 웃으며 넘길 수 있고,
잠깐의 고민쯤은 깊은 유머로 감쌀 수 있습니다.
점이 아닌 복음이 주는 위로
그렇다면 어디서 우리는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불안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복음은 말합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혼자 끌고 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존재라고요.
미래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선하시고 신실하셔서 우리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신다고 선언합니다.
“너희 중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점괘 하나로 오늘 하루 마음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삶의 기준을 세울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기둥을 붙잡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진짜 기대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그리고 답합니다.
"하나님이 너의 산성이요, 피난처요, 구원의 반석이 되신다."
결론 – 진정한 해답은...
불안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짓습니다.
점은 위안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확신과 회복은 오직 복음 안에 있습니다.
인생은 어차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길.
그 길 위에서
말씀이라는 등불을 들고 걸어갈 때,
우리 마음은 점쟁이의 말보다 더 분명한 진리를 품고
담대히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타로카드가 당신이 누군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당신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말씀의 종 송병민목사-
'리덴그레이스 문지기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흥, 진정한 부흥이란 무엇일까? (0) | 2025.04.25 |
---|---|
목사인 나를 스스로 지키는 10가지 원칙 (0) | 2025.04.25 |
'수줍음'이란 무엇일까? 복음의 렌즈를 통해서 수줍음의 숨겨진 부분을 관찰하다 (0) | 2025.04.24 |
예측 가능한 위기, 그리고 교회: '화이트 스완'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경고(by Songbyungmin) (1) | 2025.04.24 |
크리스천 리더를 위한 대화의 기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진리를 분별하는 힘– 교회사역과 팀사역에서 꼭 필요한 ‘주관적 왜곡’을 분별하는 리더의 언어훈련 (0) | 2025.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