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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Nouriel Roubini)가 ‘화이트 스완(White Swan)’이라는 개념을 통해 던진 이 말은 단지 금융 시장만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블랙 스완처럼 예측 불가능한 재난이 아닌, 충분히 예측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되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위기를 ‘화이트 스완’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교회는 과연 어떤 ‘화이트 스완’ 앞에 서 있는가?
무너지는 신뢰, 무뎌진 감각
교회의 위기는 갑작스레 찾아온 것이 아니다. 신뢰의 붕괴, 세속화, 공동체성의 해체, 다음세대의 이탈 등은 이미 10년, 20년 전부터 수차례 경고되어 왔던 현상들이다. 수많은 보고서와 통계가 이를 보여주었고, 수많은 외침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흔한 문제’로 치부하거나, ‘주님의 때’라는 모호한 위안 속에 미뤄두었다.
그 결과,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히 가속화된 교회 이탈 현상, 젊은 세대의 무관심, 사회와의 단절, 교회 간 양극화, 목회자 윤리 문제 등은 더 이상 예외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는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한 위기가 아니라, 분명히 경고되었지만 우리가 외면했던 ‘화이트 스완’의 침공이다.
교회가 외면한 경고들
- 공동체의 해체
수평적이고 인격적인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점점 행사 중심, 프로그램 중심으로 전락하면서 성도들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관계’를 느끼지 못한다. 헌신과 봉사는 있지만, 진정한 돌봄과 연결은 약해졌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그토록 아파했는데, 팬데믹이 지나고 교회는 다시 과거의 수레바퀴 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 세대 간 단절
다음세대 사역이 위기라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세대통합 전략 없이 여전히 구조적 분리와 사역의 위임(아웃소싱)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다. - 목회자에 대한 신뢰 붕괴
일부 목회자의 윤리적 일탈과 권위주의적 리더십은 전체 목회자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히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공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 복음의 세속화
성공, 성장, 부흥 중심의 교회 문화는 복음의 본질인 십자가와 회개, 섬김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통해 ‘거룩’을 기대하지 않는다.
화이트 스완 앞에서 교회가 해야 할 선택
루비니는 ‘화이트 스완’의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경고를 무시하지 않는 용기와 제도적 실행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거룩한 공동체다. 팬데믹 이후 흩어진 성도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더 깊은 관계 회복이다. 가정교회, 소그룹, 순모임, 구역 사역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한 사람의 눈물과 기도에 응답하는 교회, 그것이 회복의 시작점이다.
2.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 선택이 아닌 필수
교육부 예산이 줄어들고, 청소년 부서가 통합되거나 폐지되는 현실은 교회의 미래를 스스로 축소시키는 일이다. 이제는 ‘사역자 한 명 더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 전체를 위한 철학과 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 부모 세대, 청년 세대, 어린이 세대가 함께 예배하고 경험하는 세대 통합 예배의 실험이 요청된다.
3. 목회자의 윤리성과 공동 리더십 회복
한국 교회는 여전히 카리스마 리더 중심의 구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공동체적 리더십, 투명한 구조, 교회 운영의 민주화가 요구된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청지기이지, 조직의 CEO가 아니다.
4.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영적 개혁
성공신학이 아닌, 십자가 신학, 소비자 중심 교회가 아닌 제자도 중심의 교회, 프로그램이 아닌 말씀과 기도 중심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성도’가 아니라 ‘제자’를 세워야 하며, 이익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교회를 회복해야 한다.
나가는 말: 외면하지 말고 듣고 반응하라
누리엘 루비니는 화이트 스완이 예측 가능함에도 반복되는 위기라고 말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수많은 경고와 회개의 촉구를 주셨다. 지금은 더 이상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위로에 머무를 때가 아니다. 경고를 듣고, 회개하며, 구조를 바꾸는 실행의 시간이다.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단순한 경청을 넘어서, 영적 감각을 회복하고 반응하라는 요청이다.
화이트 스완은 경고이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려는 은혜의 신호이기도 하다. 이 경고 앞에서, 우리는 다시 교회의 본질로, 공동체의 사랑으로, 복음의 능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때 교회는 또 한 번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단지 ‘예배당의 불빛’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 속 빛을 발하는 하나님 나라의 등불이 될 것이다.
-우산지장 송병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