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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저희는 스가랴 12장의 말씀 앞에 섭니다. 주님은 하늘을 펴시며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12:1). 하나님,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의해 지어졌음을 다시 고백합니다.

     

    우리의 생명도, 호흡도, 심령도 주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고백합니다. 그런데도 저희는 마치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살아가는 것처럼 교만하게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저희의 눈을 열어 주셔서, 주님의 주권 앞에 겸손히 무릎 꿇게 하옵소서.

     

    주님, 말씀에서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 무거운 돌로 삼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12:2-3). 그 성을 대적하는 모든 민족은 결국 상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희의 마음이 떨립니다.

     

    주님의 백성을 향한 세상의 공격은 끊이지 않지만, 결국 그것은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신앙을 핍박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무겁게 누르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 그 모든 시도가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4절에서 말씀하시기를, 그 날에 모든 말을 쳐서 놀라게 하고 그 탄 자를 미치게 하시며, 모든 민족의 말을 쳐서 눈이 멀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이는 인간의 힘과 권세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도 저희는 세상의 군사력, 경제력, 정치적 권세에 마음을 빼앗기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 앞에서 고백합니다. 인간의 힘은 한순간에 눈이 멀고, 마음이 미쳐버릴 수 있는 연약한 힘일 뿐입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만이 참된 힘이며, 주님의 보호만이 영원한 방패입니다.

     

    주님, 유다의 지도자들이 마음속에 “예루살렘 주민이 그들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힘을 얻었다”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2:5). 주님, 저희도 이 고백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의 힘은 경제적인 안정에서 오지 않습니다. 정치적 안정이나 사회적 위치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은 오직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만군의 여호와로 말미암아 저희가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너무 자주 다른 곳에서 힘을 찾았습니다. 사람에게서 인정받고 싶었고, 세상의 성공을 붙들며 안도하고 싶었습니다. 주님, 저희의 잘못된 의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희의 힘의 근원이 만군의 여호와께 있음을 믿고, 오직 주님께 기대게 하옵소서.

     

    하나님, 6절 말씀에서 유다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시고 곡식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 이 말씀은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도구로 삼아 주위의 모든 대적을 무너뜨리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 저희는 스스로 아무 힘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용하시면 약한 자도 강하게 되고, 작은 자도 불길처럼 역사하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를 그렇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불길, 복음의 횃불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7절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가 먼저 유다 장막을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다윗의 집이나 예루살렘 주민의 영광이 다른 지파보다 더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저희는 얼마나 자주 서로 비교하며 더 큰 영광을 차지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 안에서도, 직장과 사회 안에서도 우리는 다윗의 집처럼 되고 싶어 하고, 예루살렘 주민처럼 대접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낮은 자를 먼저 구원하시고, 연약한 자를 먼저 세워주십니다. 이는 모든 영광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 있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게 하시고, 낮아져 섬기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10절 말씀은 이 장의 절정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애통하며 통곡하리라.” 하나님, 이 말씀을 읽을 때, 저희 마음이 뜨겁게 뜨거워집니다.

     

    주님, 회개가 저희의 결단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님이 부어주셔야만 저희가 회개할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도 그 영을 부어주소서. 우리의 마음이 완악하여 스스로 애통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우리의 심령이 찔려 죄를 깨닫고 돌이킬 수 있습니다.

     

    주님, “그들이 찌른 바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9장에서 이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봅니다. 저희의 죄 때문에,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우리의 완악함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찔리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사실을 잊고 살았는지 모릅니다. 주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독자를 잃은 부모처럼, 장자를 잃은 가족처럼 깊이 애통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가볍게 눈물 흘리는 데서 그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애통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 말씀에서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한다고 하셨습니다(12-14절). 다윗의 족속도, 나단의 족속도, 레위와 시므이의 족속도, 모든 족속이 각기 따로 애통했습니다. 주님, 이것은 회개가 단지 공동체의 행사로 끝나지 않고,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님, 저희가 남의 눈치를 보며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주님 앞에서 무너지고, 각자 주님 앞에서 눈물 흘리게 하옵소서. 아내와 남편이 함께 살고 있어도, 회개는 각자가 따로 드려야 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 교회가 형식적인 회개로 끝나지 않고, 개인적인 진실한 애통의 부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이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저희는 교회의 현실을 떠올립니다. 세상은 교회를 조롱하고, 교회는 세상의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지도자들은 종종 어리석은 목자처럼 살고, 성도들은 분열과 다툼 속에 힘을 잃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오늘 말씀처럼, 주께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면 회복될 줄 믿습니다. 주님, 우리 교회에 그 은혜를 부어주소서. 목회자들에게, 장로들에게, 성도들에게 그 영을 부어주소서. 각자 따로 애통하며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옵소서.

     

    주님,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십자가를 잊고 삽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만이 진정한 회개가 가능합니다. 주님, 우리의 눈을 들어 십자가를 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가 그분을 찌른 것임을 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와 용서를 붙들게 하옵소서.

     

    하나님, 스가랴 12장은 무거운 심판의 메시지와 동시에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주께서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민족들을 멸하시고(9절), 주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며(8절), 무엇보다 메시아를 바라보게 하시는 은혜를 약속하셨습니다. 주님, 저희가 이 약속 안에 서게 하옵소서.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우리의 힘은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의 보호는 주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회개는 주님이 부어주시는 은총의 영으로 가능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십자가에서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그분을 바라보며 애통하고, 동시에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송병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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