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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복음’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지만, 그 의미는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복음’이라는 단어가 동기부여나 도덕적 권면, 사회정의 운동, 개인의 성장 메시지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팀 켈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복음은 아니다. 복음은 좋은 충고가 아니라, 기쁜 소식이다.”
1. 복음은 충고가 아니라 ‘선포’다
복음은 영어로 Gospel, 헬라어로는 euangelion, 즉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켈러는 이 점을 거듭 강조합니다.
- 복음은 조언이 아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어"라는 충고가 아니다.
- 복음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선언이다.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다 이루셨다"는 완성된 소식이다.
복음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2. 복음은 관계의 회복을 위한 예수님의 사역이다
켈러는 복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복음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이루셨는가에 대한 소식이다.”
즉 복음의 중심은 나의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구속 사건입니다.
이 복음은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낼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3. 복음과 복음의 ‘결과’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많은 설교와 책이 복음의 결과, 즉:
- 평안한 마음
- 변화된 성품
- 공동체 안의 연합
- 사회적 정의
- 삶의 목적
을 강조합니다. 이 모두는 복음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 자체는 아닙니다.
켈러는 경고합니다:
“복음의 열매가 곧 복음인 것처럼 말하면, 복음의 능력은 사라진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하신 일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 선언을 믿을 때에만, 그 열매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4. 복음의 능력을 빼앗는 두 가지 적: 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
팀 켈러는 복음의 힘을 왜곡하거나 무력화시키는 두 가지 적을 지적합니다:
1) 율법주의 (Legalism)
-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려면 이만큼 살아야 해"
- 복음을 조건으로 바꾸고, 은혜를 노력의 보상으로 왜곡함
2) 율법폐기주의 (Antinomianism)
-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이제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어"
- 복음을 도덕적 무책임함으로 전락시킴
하지만 진짜 복음은 이 둘을 모두 넘어섭니다.
은혜는 면허가 아니라 능력입니다.
참된 은혜를 받은 자는 어떤 대가(목숨)를 지불하고서라도 기꺼이 하나님 뜻을 따르고자 하는 내적 변화를 경험합니다.
5. 복음의 3가지 핵심
켈러는 바울과 복음서 기자들이 복음을 한 가지 메시지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에는 다음 3가지 핵심 요소가 있습니다:
- 예수님의 신분
-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약속된 그리스도시다.
-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 죄를 위한 대속적 죽음, 의를 위한 부활
-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
- 하나님의 통치와 새 창조의 시작이 예수 안에서 시작되었다.
이 세 가지가 함께 복음을 구성합니다. 어느 하나만 강조하면 복음이 축소되거나 왜곡됩니다.
6. 복음 전도에는 4단계가 있다
켈러는 복음 전도가 단순한 “회개하라”는 외침이 아니라, 복음 이야기로 사람을 초대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4단계 구조로 복음 전도를 설명합니다: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 (정체성) -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다. (타락) -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셨는가?
–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 대속, 부활, 재창조 (구속) - 나는 어떻게 바르게 되는가?
–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받아들여야 한다. (응답)
이것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꾸고, 진정한 회심으로 이끄는 복음 이야기입니다.
마무리: 복음은 단순히 믿어야 할 정보가 아니라, 살아내야 할 이야기
복음은 지식이 아니라 선언이며,
조언이 아니라 초청이며,
도덕적 계율이 아니라, 은혜의 역사입니다.
팀 켈러는 우리에게 복음의 본질을 이렇게 다시 들려줍니다.
“복음은 단지 당신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이미 당신을 위해 이루신 일을 믿고, 거기서부터 새 삶을 시작하라는 초청이다.”
이 초청 앞에서, 우리는 다시 복음을 듣고, 붙들고, 살아내야 합니다.
-송병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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