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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 리뷰
― 신학적 응축과 사도신경의 신학을 통해 드러나는 바르트 신학의 진수
1. 서론: 왜 《교의학 개요》인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20세기 기독교 신학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인물이다. 그가 남긴 방대한 저작, 특히 14권에 달하는 《교회교의학》(Kirchliche Dogmatik)은 신학의 대서사시로 불리지만, 동시에 너무 방대하고 난해해 많은 이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텍스트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교의학 개요》(Dogmatik im Grundriß, 1947)는 특별하다.
이 책은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독일 본(Bonn)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바르트가 강의록 없이 오직 사도신경을 실마리 삼아 기독교 신학의 핵심을 풀어낸 강연집이다. 따라서 현장 강의의 생생한 호흡과, 방대한 신학을 응축하여 쉽게 전달하려는 바르트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의학 개요》는 말 그대로 “작지만 큰 책”으로, 바르트 신학의 진수와 핵심을 단숨에 맛볼 수 있는 입문서로 평가된다.
2. 역사적 배경: 전쟁과 폐허 속에서 다시 들려온 신학의 목소리
《교의학 개요》는 단순한 신학 강의록을 넘어,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한다. 바르트는 나치 정권에 반대하여 독일에서 추방당하고, 스위스 바젤에서 오랜 기간 강의하며 《교회교의학》 집필에 몰두했다. 그러다 전쟁이 끝난 직후, 폐허가 된 독일로 돌아와 본 대학교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당시 독일은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으로 초토화된 상태였다. 나치즘의 몰락, 전쟁의 참혹한 상처, 패전의 수치가 뒤엉켜 있었고, 교회와 신학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바르트의 강의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 다시금 기독교 신앙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신학적 호소이자, 회개와 소망의 메시지였다.
그는 조직신학적 체계 대신, 모든 신자의 입술에 익숙한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라 교의를 풀어내며, 신학은 결국 믿음과 고백의 언어임을 드러냈다. 이는 신학을 단지 학문적 체계로 환원시키지 않고, 교회의 고백과 공동체의 예배 속에서 살아 있는 진리로 회복시키려는 시도였다.
3. 내용 개관: 사도신경을 따라가는 신학의 길
《교의학 개요》는 크게 24장으로 구성되며, 사도신경의 흐름을 따라 교의학의 주요 주제를 다룬다. 각 장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통찰을 제공하며, 특히 바르트 특유의 기독론적·삼위일체적 관점이 두드러진다.
- 교의학의 과제 ― 신학은 인간의 사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이다.
- 믿음의 성격 ― 믿음은 단순한 사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백하는 전인적 행위다.
- 하나님 교리 ― 아버지, 전능자,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은 인간의 사유를 초월하면서도 인간을 향해 말씀하시는 분이다.
- 그리스도론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고난, 십자가, 부활, 승천은 신앙의 중심이며, 모든 교의학은 그리스도론적 중심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성령론과 교회론 ― 성령은 교회를 세우고, 공동체는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죄 사함과 부활의 소망 속에서 살아간다.
즉, 《교의학 개요》는 사도신경의 틀을 따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와 사역을 차례로 설명하며, 신앙의 핵심을 신학적으로 정리해낸다.
4. 신학적 특징
(1) 사도신경적 구조와 신학적 응축
바르트는 신학을 전개할 때 체계적 논리보다는 사도신경의 고백을 따라간다. 이는 신학이 단순한 사변이나 철학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고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2) 기독론 중심성
《교의학 개요》에서도 바르트 신학의 핵심은 변함없다. 모든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석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이고, 인간의 구원과 화해의 길이기 때문이다.
(3) 신학의 실천적 성격
이 강의는 학문적 논문이 아니라, 실제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기에 언어가 쉽고 명료하다. 동시에 전쟁 직후의 폐허 속에서 교회와 사회를 향한 실천적 호소가 담겨 있다.
(4) 신앙과 신학의 통합
바르트는 신학을 단순히 학문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신학의 본질을 "믿음의 순종"으로 보았고, 따라서 신학적 탐구는 곧 신앙적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5. 한국 교회와 오늘의 의미
(1) 위기 시대의 신학
한국 교회 역시 성장의 열매를 누린 이후, 오늘날 세속화, 신뢰도 하락, 교세 감소, 다음세대 이탈이라는 위기 속에 놓여 있다. 《교의학 개요》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독일 교회에 신학적 반성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듯, 오늘 우리에게도 신학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도전을 준다.
(2) 신학과 교회의 회복
바르트는 신학이 교회의 언어와 예배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국 교회 역시 학문으로서의 신학과 현장 목회가 분리된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금 고백과 예배 속에서 살아 있는 신학을 회복해야 한다.
(3) 사도신경 교육의 회복
바르트가 사도신경을 따라 신학을 전개한 것은 신앙 교육의 본질을 일깨운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공동체적 고백을 통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 신학 교육의 목표여야 한다.
6. 학문적 가치와 평가
《교의학 개요》는 단순한 입문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신학적으로: 《교회교의학》의 방대한 내용을 압축해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 역사적으로: 전후 독일 교회와 사회 속에서 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 목회적으로: 설교자와 교사들이 신앙의 핵심을 쉽고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는 모델이 된다.
- 영성적으로: 신학이 단순히 학문이 아니라, 믿음과 기도의 여정임을 드러낸다.
특히 바르트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이들조차도 《교의학 개요》를 반드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는다. 왜냐하면 이 책은 그의 신학의 무게를 가볍게 줄이면서도, 깊이는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이다.
7. 결론: 작은 책 속에 담긴 거장의 신학
《교의학 개요》는 방대한 바르트 신학의 정수를 담은 "작은 교의학"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신학의 어려움에 질식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의 단순함과 신학의 깊이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바르트는 이 책에서, 신학은 결국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고백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교의학 개요》는 단순히 신학 입문서를 넘어, 오늘날 위기의 교회와 신학에 깊은 반성과 소망을 던지는 책이다.
(송병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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