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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읽기

    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 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또 지붕에서 하늘의 뭇 별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과
    6   여호와를 배반하고 따르지 아니한 자들과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절하리라


    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여호와께서 희생을 준비하고 그가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음이니라
    8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9   그 날에 문턱을 뛰어넘어서 포악과 거짓을 자기 주인의 집에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1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어문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제 이 구역에서는 울음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일어나리라
    11   막데스 주민들아 너희는 슬피 울라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거래하는 자들이 끊어졌음이라
    12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13   그들의 재물이 노략되며 그들의 집이 황폐할 것이라 그들이 집을 건축하나 거기에 살지 못하며 포도원을 가꾸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본문묵상: 스바냐 1장 1–13절 

    “여호와의 날: 진멸과 구별”


    1. 서론 – 여호와의 날을 외친 예언자 스바냐

    스바냐는 남유다의 요시야 시대(기원전 640–609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성경은 그를 특별히 “히스기야의 현손”이라 소개합니다(1절). 이는 예언자의 가문적 배경을 강조하는 드문 경우인데, 아마도 그의 메시지가 단순히 “사회적 비판”이 아니라,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고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상기시키기 위함일 것입니다.

    스바냐가 활동하던 시대는 요시야 개혁 이전, 혹은 그 개혁이 막 시작되던 혼란스러운 시기로 보입니다. 우상숭배와 종교적 혼합주의가 만연했고, 경제적 불의와 사회적 타락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스바냐는 “여호와의 날”이라는 주제를 강력하게 외칩니다.

    오늘 본문(1–13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창조 세계 전체에 임할 진멸(2–3절)
    2.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4–13절)

    2. 본문 주해 및 묵상

    2.1. 보편적 심판: 창조의 역전 (2–3절)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여기서 “진멸하다”는 히브리어 אָסַף (‘아사프’)로, ‘쓸어 모으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며 ‘사람, 짐승, 새, 물고기’를 순서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스바냐 1장 3절은 이 창조의 순서를 거꾸로 나열하며 “모든 것을 진멸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즉, 심판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창조의 역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창조의 질서를 거꾸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적용: 인간의 죄는 단순히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죄는 결국 세상을 무너뜨리고, 삶을 해체시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혼란과 파괴는, 하나님 없는 삶이 낳는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합니다.


    2.2.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심판 (4–6절)

    하나님은 이제 범위를 좁혀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십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1. 바알 숭배 (4절) – 가나안 신 바알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했습니다.
    2. 별 숭배 (5절) – 지붕 위에서 하늘의 별에 절한 자들. 이는 천체 숭배이자 당시 근동 종교와의 혼합주의입니다.
    3. 이중 충성 (5절) –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들.” ‘말감’은 암몬의 신 ‘밀곰(Milcom)’을 가리킵니다.
    4. 배반과 무관심 (6절) – 여호와를 떠난 자들,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자들.

    핵심 포인트: 하나님은 단순히 “우상 숭배”만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무관심도 동일하게 심판의 이유가 됩니다.

    오늘의 적용: 우리 시대의 우상은 ‘바알’이나 ‘밀곰’이 아니라, 돈, 성공, 권력, 쾌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찾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는” 신앙의 냉담함이야말로 심판의 근거가 됩니다.


    2.3. 여호와의 날의 엄숙함 (7절)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잠잠하다’(הַס, has)는 ‘입을 닫고 조용히 하다’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변명과 소리가 멈추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장면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희생을 준비하시고, 청할 자들을 구별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희생’은 심판의 은유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의 제물로 삼으셨다는 충격적인 메시지입니다.

    오늘의 적용: 우리는 종종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하고 싶어 하지만, 심판 날에는 모든 입이 닫힐 것입니다(롬 3:19). 구원은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4. 사회 지도층과 부패한 권력에 대한 심판 (8–9절)

    하나님은 “방백들과 왕자들,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권력자들이 이방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신앙적 정체성을 잃어버렸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또한 “문턱을 뛰어넘는 자들”(9절)은 아마도 이방 신전의 풍습을 따르거나, 불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휘두른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포악과 거짓으로 주인의 집을 채운 자들”입니다.

    오늘의 적용: 하나님은 권력층의 불의와 부패를 심판하십니다. 권력은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만, 자기 집을 채우는 수단이 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것을 무너뜨리십니다.


    2.5. 도시에 임하는 심판 (10–11절)

    예루살렘의 주요 지역—어문, 제이 구역, 작은 산들, 막데스—에서 울음과 무너짐의 소리가 들릴 것이라 예언합니다. 특히 “가나안 백성이 다 패망하고 은을 거래하는 자들이 끊어졌다”는 말은, 상업과 경제가 무너짐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적용: 우리가 의지하는 경제 시스템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습니다. 돈과 시장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흔드시면 가장 견고해 보이는 금융과 산업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2.6. 무관심과 자기기만에 대한 심판 (12–13절)

    가장 무서운 심판의 대상은,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말하는 자들입니다. 즉, 하나님을 무력화시키는 태도—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 일에 무관심하다고 여기는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겠다”(12절) 하십니다. 이는 철저하고 세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재물과 집, 포도원이 모두 빼앗길 것입니다.

    오늘의 적용: 오늘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관여하지 않는 신’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역사와 삶을 철저히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무관심과 자기기만은 결국 심판을 불러옵니다.


    3. 복음적 연결 – 심판에서 구원의 길

    스바냐의 메시지는 철저히 심판적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 선언은 구원을 위한 토대이기도 합니다.

    • 창조의 역전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겪으신 심판과 연결됩니다. 창조의 주께서 스스로 진멸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 희생 제물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 대신 아들을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 남은 자의 구별(7절)은,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구별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 따라서 스바냐 1장은 단순한 파괴의 메시지가 아니라, 십자가 안에서만 피할 수 있는 심판의 그림자입니다.


    4. 오늘을 사는 교회를 위한 교훈

    1.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존중하라 – 죄는 질서를 해체한다.
    2. 하나님을 찾으라 – 무관심이 가장 큰 우상숭배다.
    3. 입을 닫고 은혜를 바라라 – 심판 앞에서 자기 의를 주장하지 말라.
    4. 권력과 부를 경계하라 – 포악과 거짓으로 채운 집은 반드시 무너진다.
    5. 하나님은 철저히 역사 속에 개입하신다 – 무관심은 불신앙이다.

    5. 결론 –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는 길

    스바냐 1장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랑의 하나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죄와 우상을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없다면, 참된 사랑도 없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진멸당해야 할 존재였지만, 그리스도께서 대신 진멸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멸망의 대상이 아니라, 은혜로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날’을 두려움으로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 준비하며, 성결과 순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6. 마무리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날의 심판 앞에서 우리의 입을 닫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를 구별하시고, 은혜로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을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무관심에서 돌이키게 하시고,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존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송병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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