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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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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 ③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십계명 제3계명이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던지는 질문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7절

    십계명의 제1계명은 우리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가?”

    제2계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성경의 하나님인가, 아니면 네가 만들어 낸 하나님인가?”

    그리고 이제 제3계명은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그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제3계명을 흔히 아주 좁게 이해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설처럼 사용하지 말 것.

    물론 그것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제3계명은 그것보다 훨씬 깊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입으로 잘못 발음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사용하며, 하나님을 내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 많이 사용되는 시대다.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말한다.

    유튜브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말한다.

    정치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한다.

    사업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한다.

    성공과 돈을 이야기할 때도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한다.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다.

    그래서 제3계명은 오늘 우리에게 아주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정말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정체성과 성품과 명예가 담겨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누군가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고,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으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단순히 발음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를 내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3계명은 갑자기 우리 삶 가까이 다가온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가

    오늘날 교회에서 가장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표현 가운데 하나가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며,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신다.

    문제는 내가 생각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것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렇게 하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옳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런 말은 매우 강력하다.

    왜냐하면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방에게 하나님을 거역할 것인지 내 말을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절대화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제3계명이 경고하는 중요한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3. 신앙의 언어가 나의 욕망을 포장할 때

    현대 기독교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신앙의 언어로 포장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업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이런 표현 자체가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고, 사업을 도우실 수도 있으며, 교회를 사용하실 수도 있다.

    문제는 내 욕망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하는 순간 발생한다.

    내가 원하는 성공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단정하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내가 가진 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인정이라고 해석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어느 순간 나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된다.

    제3계명은 우리에게 묻는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르고 있지는 않은가?”


    4.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조종할 때

    신앙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이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을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결정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헌금을 많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해야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들은 사람의 양심을 매우 강하게 압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인간의 권력과 동일시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목회자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교회의 결정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동일한 것도 아니다.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내 말이 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쉽게 사용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말을 가장 조심스럽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가장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5. 교회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사용할 수 있다

    제3계명은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도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할 수 있다.

    교회의 프로그램을 성공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교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자신의 지도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심지어 교회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한마디로 모든 설명을 끝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의 실수를 감추기 위한 방패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장식도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을 통해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 거짓을 행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 탐욕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탐욕스러운 존재로 오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 사랑의 하나님을 말하면서 사람을 미워하면 사람들은 복음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3계명은 교회에게도 매우 무거운 계명이다.


    6.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팀 켈러가 우상에 대해 설명했던 중요한 관점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마음이 좋은 것들을 궁극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3계명은 그보다 한 단계 더 깊은 문제를 보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도 하나님을 이용할 수 있다.

    교회도 다닌다.

    예배도 드린다.

    기도도 한다.

    성경도 읽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하나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나의 성공을 정당화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중심이다.

    이것은 매우 무서운 신앙의 왜곡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보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더 교묘할 수 있다.


    7. 정치와 사회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 문제는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와 주장을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 종교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나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치.”

    “하나님이 이 사람을 세우셨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나의 정치적 판단을 너무 쉽게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정치적 선택을 곧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특정한 인간 집단이나 정치적 세력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도장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신의 판단 앞에서조차 겸손해져야 한다.

    “내가 옳다”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내가 틀릴 가능성은 없는가?”

    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8. AI 시대에는 제3계명이 더 중요해진다

    AI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이제 누구나 상당히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설교문도 만들 수 있다.

    기도문도 만들 수 있다.

    성경 묵상문도 만들 수 있다.

    신앙적인 글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그 문장이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그 문장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가?”

    AI가 만들어 준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AI가 성경을 설명해 준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AI가 만들어 준 은혜로운 기도문을 내 마음의 기도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AI는 도구다.

    그리고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AI는 하나님이 아니다.

    AI가 만들어 준 문장이 하나님의 말씀도 아니다.

    그래서 AI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더 많이 성경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무엇이 인간의 해석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3계명은 AI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때 정말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가?”


    9.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제3계명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욕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높이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내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내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나의 삶이 그 이름에 합당하도록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첫 번째 간구도 바로 이것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장 9절

    참 놀랍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먼저 우리의 필요부터 말하도록 가르치지 않으셨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구하게 하셨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십시오.”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다.

    내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다.


    10.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하나님의 이름을 많이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직하게 사는 것.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돈 앞에서 양심을 팔지 않는 것.

    용서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

    실패한 사람을 조롱하지 않는 것.

    내가 틀렸을 때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 것.

    그럴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조금씩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장 16절

    결국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낸다.


    1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의 무게

    우리는 교회에서 너무 익숙하게 말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정말 그 의미를 알고 사용하는가?

    내가 성공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때로는 실패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일 수 있다.

    손해를 보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일 수 있다.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 제3계명은 우리 입술만 다루는 계명이 아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다룬다.


    12. 제3계명 앞에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몇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 보면 좋겠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내 생각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성공과 소유를 너무 쉽게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단정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통제하거나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신앙적 열심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가 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말하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는 하나님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

    “나의 삶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제3계명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짊어지고 사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름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이름 앞에 하나의 이름을 더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보면서 교회를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를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정직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을 수 있다.

    내가 탐욕스럽게 살면 복음이 왜곡될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할 수 있다.

    반대로 내가 사랑하고,

    용서하고,

    정직하게 살고,

    약한 사람을 돌아보고,

    손해를 감수하면서 진실을 선택한다면,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아름답게 드러날 수도 있다.

    그래서 제3계명은 우리에게 단순히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고만 말하지 않는다.

    더 깊이 이렇게 묻는다.

    “너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제1계명은

    “누가 하나님인가?”

    를 묻는다.

    제2계명은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를 묻는다.

    그리고 제3계명은

    “그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드러내며 살아갈 것인가?”

    를 묻는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말이 넘쳐나는 시대다.

    AI는 수많은 문장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끊임없이 외치며,

    SNS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런 시대에 그리스도인은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더 신중하게 사용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말은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그 고백을 우리의 삶으로 살아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길이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7절

    오늘도 이 말씀 앞에서 조용히 물어보자.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예수님의 기도와 같아지기를 바란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장 9절

    내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돌려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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