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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 시편 63:1

    물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

    시편 63편의 표제는 짧습니다.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광야입니다. 물이 없습니다. 땅은 마르고 황폐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입에서는 원망보다 갈망이 먼저 나옵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다윗은 자신의 목마름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목마름을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져갑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광야를 만납니다.

    기도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때가 있고, 열심히 살아왔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관계가 메마르고, 경제적으로 막막하고, 몸과 마음이 지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더 얻어야 이 목마름이 사라질까?”

    그러나 다윗은 다른 질문을 합니다.

    “이 목마름 속에서 내가 누구를 찾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답은 분명합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1절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이 단순히 하나님의 도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물도 필요합니다. 안전도 필요합니다. 적으로부터 보호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습니다.

    3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놀라운 고백입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생명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이 주시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원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광야에서도 성소를 기억하다

    2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광야에 있습니다.

    성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기억을 현재의 광야로 가져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지금 예배가 잘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도가 잘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메마르고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과거의 은혜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셨던 순간.

    기도 가운데 위로하셨던 순간.

    말씀 한 구절이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켰던 순간.

    돌이켜보면 지나온 길에도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현재의 감정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5절은 시편 63편에서 가장 역설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다윗은 광야에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은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환경은 메마른데 영혼은 만족합니다.

    이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에게 광야가 사라졌다는 뜻도 아닙니다.

    광야 한가운데서도 하나님 때문에 만족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흔히 상황이 좋아져야 마음이 평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생기면.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면.

    건강이 회복되면.

    그때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 63편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환경이 만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혼의 만족이 되실 수 있습니다.


    침상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

    6절은 매우 현실적입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다윗은 침상에서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새벽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밤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낮에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걱정이 침대에 누우면 다시 찾아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지?”

    “그 일은 잘될까?”

    “내일은 괜찮을까?”

    그런데 다윗은 그 시간에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신앙은 거창한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침상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가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의 하루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작은 습관이 필요합니다.

    잠들기 전에 말씀 한 구절을 떠올리고, 새벽에 눈을 뜨면 짧게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그 작은 반복이 광야를 지나가는 영혼을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8절은 시편 63편의 중요한 결론입니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앞부분만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면 더 중요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다윗을 붙들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해서 오늘까지 온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기도를 잘해서 버틴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말씀을 완벽하게 지켜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닙니다.

    돌아보면 내가 하나님을 붙들었던 순간보다 하나님이 나를 놓지 않으셨던 순간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마지막 자랑은 이렇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붙드셨습니다.”


    광야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그리스도

    시편 63편의 광야는 결국 복음 안에서 더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도 광야에 서셨습니다.

    사십 일 동안 금식하시며 배고픔을 경험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시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다윗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갈망했다면, 예수님은 광야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완전한 순종을 살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생수를 주시는 분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광야에서 진짜 목마른 이유는 단순히 가진 것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지음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아무리 채워도 다시 목마릅니다.

    성공해도 목마르고, 돈이 있어도 목마르고, 사람의 사랑을 받아도 또 목마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른 만족을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핍을 모두 없애 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결핍 가운데서도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만족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8절의 고백처럼, 우리가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보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드십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오늘도 자기 백성을 붙드십니다.


    오늘의 적용 — 광야를 갈망으로 바꾸십시오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그 사실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인정하십시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목마르면 목마르다고 말하십시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그 갈증을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주님, 제가 지금 목마릅니다. 그런데 이 목마름을 세상의 것으로만 채우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더 갈망하게 하소서.”

    오늘 밤 침상에서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붙드는 힘보다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는 은혜가 더 큽니다.

    광야가 끝나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 같은 시간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더 얻으면 이 목마름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저를 돌아봅니다.

    오늘 다윗의 고백을 따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것보다 주님 자신을 더 갈망하게 하시고,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믿게 하소서.

    침상에서도 주님을 기억하게 하시고,
    새벽에도 말씀을 붙들게 하소서.

    무엇보다 제가 주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른손이 저를 붙들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시고
    말씀으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하게 하시고,
    마른 땅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는 영혼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묵상할 질문

    1.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처럼 느껴지는 곳은 어디입니까?
    2.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원하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원하는 것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3.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셨던 순간을 하나 떠올려 본다면 무엇입니까?
    4. 잠들기 전과 아침에 눈을 뜬 직후, 나는 주로 무엇을 생각합니까?
    5.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신다”는 사실이 오늘 나의 불안과 두려움에 어떤 위로를 줍니까?
    6.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셨다는 사실이 나의 현재 광야를 어떻게 바라보게 합니까?

    시편 63편 핵심 구절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 시편 63:3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마무리

    시편 63편은 광야가 없는 삶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광야 한가운데서 노래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광야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광야가 있다면, 그곳을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로 바꾸어 달라고 기도해 봅시다.

    물이 없는 곳에서 생수를 찾고,
    메마른 곳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하고,
    힘이 빠지는 순간에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오른손을 의지합시다.

    광야보다 크신 하나님,
    결핍보다 크신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우리를 붙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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