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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58편 묵상


    본문 말씀

    시편 58편 —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아직도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으로 폭력을 달아 주는도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하나님이여 그들의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그들이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화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뜨겁게 하기 전에 생나무든지 불 붙는 나무든지 강한 바람으로 휩쓸려가게 하소서 의인이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그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복음 중심 성경 묵상

    솔직하게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편을 읽고 불편하지 않으셨다면 오히려 이상합니다.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만삭 되지 못하여 출생한 아이가 햇빛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그의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은혜롭고 순한" 성경 말씀이 아닙니다. 다윗이 이런 말을 기도로 드렸다는 사실 자체가 당혹스럽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시편이 진짜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감정을 세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겠습니다

    정의를 지켜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권력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을 볼 때(1-2절), 우리 안에서도 이런 감정이 올라옵니다. 뉴스를 보다가, 혹은 가까이서 벌어진 부당한 일을 목격했을 때, "저런 사람은 벌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 다윗처럼 격렬하게 표현하지는 않아도, 그 뿌리는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은 이런 감정을 느끼자마자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생각을 해도 되나?" 그래서 억누르거나, 억지로 "그래도 사랑해야지"라며 감정을 서둘러 봉합합니다. 이 시편은 그렇게 서두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율법이 하는 일 — 부패한 세상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다

    3-5절은 다윗이 악을 얼마나 근원적인 문제로 보는지 보여줍니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이것은 몇몇 나쁜 사람들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인간 안에 깊이 뿌리내린 죄의 본성에 대한 진단입니다. 그리고 이 시편이 다루는 대상은 평범한 악인이 아니라 "통치자들", 곧 정의를 세워야 할 책임과 권력을 가진 자들입니다(1절). 이 시편이 오늘 우리에게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정의를 왜곡할 때, 개인은 무력합니다. 법정에서, 직장에서, 사회 시스템 안에서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어디에도 호소할 곳이 없다고 느꼈던 순간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다윗의 격렬한 언어는 바로 그 무력함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 이유

    만약 이 시편이 여기서 끝난다면, 우리는 그저 "인간의 분노가 얼마나 격렬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고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윗은 스스로 손에 칼을 쥐고 원수를 처단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종일관 "하나님이여", "여호와여"라고 부르며, 심판을 하나님께 구합니다(6절). 이것이 결정적입니다. 다윗의 분노는 정당했지만, 그 분노의 실행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졌습니다. 이는 로마서가 말하는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다윗은 이 원리를 이미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복음이 하는 일 — 정의를 향한 갈망을 옳게 정돈하다

    복음은 우리에게 "부당함을 보고도 화내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고, 불의를 향한 분노는 그분의 성품을 닮은 반응입니다. 문제는 분노 자체가 아니라, 그 분노를 스스로 집행하려는 시도입니다. 복음이 하는 일은 우리의 정의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정의감의 실행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넘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11절의 마지막 소망, "진실로 땅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이 시편 전체가 도달하는 결론입니다. 우리가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참는 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

    여기서 십자가를 빼놓고는 이 시편을 온전히 읽을 수 없습니다. 다윗이 저주한 그 "악"의 실체, 곧 인간이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는 죄의 본성을, 그리스도는 정죄하지 않으시고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정의를 왜곡한 권력자들, 곧 빌라도와 대제사장들과 군중 앞에서 아무 죄 없이 처형당하셨습니다. 만약 정의가 이 세상에서 즉각 집행되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구했던 즉각적 심판을 유보하시고, 그 자리에 십자가를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진실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지연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전히 만족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는 심판받았고, 동시에 은혜가 흘러나왔습니다. 우리가 오늘 부당함 앞에서 분노할 때, 우리는 십자가를 통과한 정의, 곧 심판과 자비가 함께 이루어진 그 정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재림하실 그리스도께서, 지금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부패한 권력에 대해 완전한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적용

    오늘 여러분에게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있다면, 그것을 죄책감으로 억누르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쏟아 놓으십시오. 다만 그 분노의 실행을 여러분의 손에 쥐지 말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이미 십자가에서 정의와 자비를 함께 이루신 그리스도께 맡기십시오. 그것이 이 불편한 시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가장 정직한 위로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솔직히 고백합니다. 부당한 일을 볼 때 제 안에서도 격렬한 분노가 일어납니다. 정의를 지켜야 할 자리에서 침묵하거나 오히려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들을 보며 다윗처럼 격한 마음이 듭니다. 이 감정을 억지로 감추지 않고 오늘 정직하게 주 앞에 쏟아 놓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을 제 손으로 집행하려 하지 않고, 오직 심판하시는 주께 맡깁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죄를 심판하시고 동시에 은혜를 베푸신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지금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반드시 정의를 이루실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견디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묵상할 질문

    1. 부당한 일을 목격했을 때 격렬한 분노를 느꼈던 경험이 있나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었나요?
    2. 그리스도인은 분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감정을 억누른 적이 있나요?
    3. 다윗이 심판을 하나님께 맡겼다는 사실이, 나의 정의감을 다루는 방식에 어떤 도전을 주나요?
    4. 하나님의 정의가 지연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미 만족되었다는 사실이, 지금의 부당함을 견디는 데 어떤 힘이 되나요?
    5. 오늘 내가 스스로 갚으려 했던, 그러나 하나님께 맡겨야 할 억울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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