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본문읽기

    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3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5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6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1. 본문 요약정리

    1️⃣ 대적의 등장 (1–2절)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한다는 소식을 듣자,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겉으로는 협력자처럼 보였다.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그들은 자신들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왔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조상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에 의해 사마리아 지역으로 이주된
    혼합 민족들이었다(왕하 17:24-33).
    겉모습은 경건해 보이지만,
    실상은 이방 종교와 혼합된 신앙이었다.

    2️⃣ 성전 건축 거절 선언 (3절)

    스룹바벨과 예수아, 그리고 이스라엘 족장들은
    그들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그 이유는 분명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맡기신 일이었고,
    하나님은 혼합된 신앙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스룹바벨은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에 따라,
    오직 언약 백성만이 이 일을 감당해야 함을 선포했다.

    3️⃣ 본격적인 방해 시작 (4–5절)

    대적들은 거절당하자 곧 본색을 드러냈다.
    그들은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했고,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계획을 막았다.
    이 방해는 “바사 왕 고레스 시대부터 다리오 왕 때까지” —
    즉, 십수 년 동안 지속된 장기적 저항이었다.
    영적 사역의 방해는 한순간이 아니라,
    꾸준하고 집요하게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 정치적 고발 (6–10절)

    아하수에로(즉 크세르크세스, 에스더서의 왕) 때에는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정식으로 고발하는 서신이 올라갔다(6절).

    그 후 아닥사스다 왕 때에는
    비슬람, 미드르닷, 다브엘, 르훔, 심새 등
    사마리아의 행정 관리들과 여러 민족 대표들이
    예루살렘 재건을 반대하는 공식 문서를 올렸다(7–10절).

    그들은 아람어로 기록된 문서를 바사 왕에게 보내
    유다의 성전과 성벽 재건을 정치적 반역 행위로 왜곡했다.
    그 결과, 성전 공사는 장기간 중단된다(이후 4:24 참조).


    2. 본문 묵상

    1️⃣ “함께하자”는 제안의 이면 — 타협의 유혹

    대적들은 처음부터 전쟁을 건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니 함께하자.”
    이 말은 가장 위험한 형태의 공격이었다.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박해보다 혼합이 아닐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외부의 전쟁보다
    이방 신앙과의 혼합이 더 무서운 재앙을 불러왔다.
    스룹바벨은 이 점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이익이나 협력의 편의를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세상 사람의 손을 섞지 않겠다”고 결단한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다.
    세상과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진리와 타협하려는 유혹이 늘 존재한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좋은 의도’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2️⃣ 거절 후 시작된 적대감 — 신앙의 분명함은 대가를 부른다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단호히 거절하자
    대적들은 즉시 태도를 바꾼다.
    ‘협력자’에서 ‘적대자’로 변한다.

    진리를 붙드는 사람은 언제나 오해와 공격을 받는다.
    그들은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고, 뇌물을 주어”
    조직적으로 성전 건축을 방해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대적이 일어난다
    영적 원리를 보여준다.
    믿음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방해조차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3️⃣ ‘정치적 고발’ — 신앙을 왜곡하는 세상의 언어

    대적들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반역”으로 왜곡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성전 재건이
    세상 왕에게는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것이 세상의 시각이다.
    세상은 언제나 신앙을 자기 기준으로 재단한다.

    오늘날도 복음을 전하면 “배타적이다”
    진리를 선포하면 “편협하다”
    예배를 지키면 “비합리적이다”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직 말씀의 기준으로 선다.


    4️⃣ “오랜 침묵의 시간” — 방해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성전 건축은 약 16년간 중단된다.
    이스라엘은 침묵의 시간을 지나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하나님이 쉬신 시간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 같은 선지자를 일으켜
    다시 백성의 마음을 일으키신다(스 5:1).

    하나님은 대적의 공격을 이용해
    백성의 믿음을 정결하게 하시고,
    그들의 중심을 다시 예배로 돌리신다.
    방해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의 전조(前兆)였다.


    3. 본문이 주는 교훈과 오늘의 적용

    1️⃣ 하나님의 일에도 방해가 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뜻이었음에도
    즉시 대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뜻이 명확할수록,
    사탄의 저항도 치열하다.
    그러므로 방해는 하나님의 일의 실패가 아니라,
    그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2️⃣ 진리를 위해서는 거절할 용기가 필요하다

    스룹바벨은 정치적 유익보다
    신앙의 순수성을 택했다.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
    이 말은 배타적인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심을 고백하는 신앙의 고백이었다.
    교회가 타협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세상이 교회의 정체성을 본다.

    3️⃣ 믿음의 사람은 세상 앞에서 오해받을 수 있다

    대적들은 유다를 반역자로 고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거짓말 속에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진리를 왜곡하는 세상보다
    더 오래, 더 깊이 일하신다.
    믿음의 사람은 “억울함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4️⃣ 하나님은 방해 속에서도 사람을 준비하신다

    성전이 중단된 동안,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우고, 백성의 마음을 단련하셨다.
    우리의 “멈춤”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신앙인은 침묵의 시간에
    더 깊이 하나님께 뿌리내린다.

    5️⃣ 신앙 공동체는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

    대적들은 “우리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하나님은 혼합된 신이었다.
    하나님은 진리의 순수함을 지키는 공동체를 사용하신다.
    교회가 세상의 가치와 섞일 때 능력을 잃는다.
    거룩함은 분리됨에서 나온다.


    4. 본문에 충실한 기도문

    “방해 중에도 멈추지 않는 믿음의 공동체를 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
    오늘도 당신의 백성이 예배의 제단을 다시 세우려 할 때,
    세상은 그 일을 방해하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당신의 일에는 언제나 대적이 일어나지만,
    그 대적조차도 당신의 섭리 안에 있음을.

    주님,
    스룹바벨과 예수아처럼
    세상의 유혹 앞에서 단호히 말하게 하소서.
    “이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당신들은 우리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사람의 환심을 구하지 않게 하시고,
    진리의 순수함을 끝까지 지키게 하소서.

    하나님,
    방해로 인해 손이 약해질 때,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두려움 대신 믿음으로 일어서게 하소서.
    사람의 뇌물과 권세가 우리의 길을 막을 때에도
    하늘의 뜻을 향한 우리의 걸음을 멈추지 않게 하소서.

    억울한 고발과 오해 속에서도
    침묵으로 인내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배우게 하소서.
    주님의 교회가 세상 앞에서
    진리를 두려움 없이 선포하게 하시고,
    믿음의 순결함으로 이 땅의 어둠을 비추게 하소서.

    주님,
    혹시 우리의 신앙이 세상과 타협하려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깨워 주시고,
    ‘함께하자’는 달콤한 말보다
    ‘오직 하나님만’이라는 고백으로 살게 하소서.

    방해 속에서도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멈춘 시간 속에서도 당신은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우리의 침묵과 눈물 속에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당신의 성전이 다시 세워지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에 제단이 세워지고,
    우리의 공동체에 예배가 회복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요약 문장

    “하나님의 일에는 방해가 따르지만,
    하나님은 그 방해 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는 자가 결국 성전을 완성한다.”

    (송병민목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