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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포레스 알렌이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 한국에는 단 하나의 개신교 교회만 존재했다. 그러나 140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 개신교는 232개의 교단으로 분열되었으며, 그중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만 해도 177개의 교단이 존재한다. 이외에도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6개), 예장 합동 계열(60개), 개혁 계열(20개) 등 다양한 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1957년에는 개신교 교단 수가 13개에 불과했지만, 이후 50여 년 동안 급격한 분열이 일어났다.
교파와 교단의 개념
개신교 내에서 큰 흐름을 이루는 종파를 ‘교파’라고 하며, 대표적으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이 있다. 반면, 같은 교파 내에서도 신학적 견해나 운영 방식의 차이로 갈라진 조직을 ‘교단’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장로교(교파) 안에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고신 등 다양한 교단이 존재한다.
초기 개신교의 한국 선교 정책
1884년 첫 선교사가 들어온 후, 장로교와 감리교를 중심으로 선교가 이루어졌다. 이후 성공회, 침례교, 성결교, 오순절교회 등 다양한 교파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개신교의 기반이 다져졌다. 특히 미국의 교파주의(denominationalism)가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1909년에는 ‘선교지 분할 협정’을 통해 지역별로 특정 교단이 선교를 담당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함경도는 캐나다 장로교, 평안도와 경북은 북장로교, 전라도는 남장로교, 부산과 경남은 호주 장로교가 맡았다. 이러한 선교지 분할은 초기에는 불필요한 경쟁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단의 지역적 고착화로 인해 이후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한국 개신교 교단 분열의 주요 사건들
1) 1910~1930년대: 초기 교단 분열
1910년, 전라북도에서 최중진 목사가 선교사들과 갈등을 빚으며 대한예수교 자유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한국인 목회자들의 성장을 제한하려는 선교사들의 태도에 반발해 독립을 선언했다. 1918년에는 황해도에서 김장호 목사가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하다가 장로교에서 분리되어 조선기독교회를 설립했다. 1920년대에는 대구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임한진 목사가 교단과 갈등을 빚고 자치교회를 세웠으며, 1930년대에는 성령운동과 은사운동을 강조하던 백남주, 한준명 목사가 예수교회를 창립했다.
2) 1945년 이후: 해방 후 본격적 교단 분열
해방 이후 신사참배 문제로 인해 교단이 크게 분열되었다. 1946년, 신사참배에 반대했던 옥중 성도들이 기존 교회와 단절하고 재건교회를 세웠다. 1952년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경남 지역의 목회자들이 고려신학교를 세우고,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측을 설립했다.
3) 1950년대: 신학적 이견으로 인한 분열
1953년에는 김재준 목사가 성서비평학을 가르친 것이 문제가 되어 대한기독교장로회(기장)가 설립되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을 강조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보수적인 신학생들이 반발하면서 교단이 분리되었다. 1959년에는 박형룡 교수의 재정 문제와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 문제가 얽히며 장로교가 예장 통합과 예장 합동으로 분열되었다. WCC 가입 찬성파는 예장 통합을 형성했고, 반대파는 예장 합동을 만들었다.
4) 1960년대 이후: 성결교·침례교의 분열과 통합
성결교회에서도 WCC 가입 문제로 인해 대한예수교성결교회(예성)와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로 갈라졌다. 그러나 일부 교단은 다시 통합을 이루기도 했다. 침례교는 포항 측과 대전 측으로 나뉘었지만, 후에 한국침례회연맹으로 재통합되었다. 감리교 역시 감독 선출 문제로 여러 차례 분열을 겪었으나, 결국 단일 교단으로 유지되었다.
한국 개신교 교단의 변화
1. 교단 분열의 원인
한국 개신교 교단 분열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첫째, 신학적 차이(성서비평학, WCC 가입 여부 등)로 인한 갈등이다. 둘째, 선교사와 한국 목회자 간의 권력 다툼이다. 셋째, 신사참배, 6.25 전쟁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넷째, 교단의 지역적·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했다.
2. 교단 색채의 희미화
1980년대 이후, 교통 발달과 이주 증가로 인해 특정 교단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졌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교단의 교회만 다니는 경향이 강했지만, 현대에는 교단보다 목회자의 설교나 신앙생활의 환경이 교회 선택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그 결과 교단 간 차이가 점점 희미해지고, 보편적인 개신교적 신앙이 강조되었다.
결론: 한국 개신교 교단 분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한국 개신교의 분열은 부정적인 측면과 긍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교단 분열이 개인적·집단적 이기심과 권력 다툼으로 인해 발생한 경우가 많으며, 지나친 분열이 한국 교회의 약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교회의 개혁과 신학적 정통성을 지키려는 노력도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종교개혁 당시 루터와 칼뱅이 가톨릭에서 분리된 것처럼, 일부 분열은 교회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미래에는 단순한 분열을 반복하기보다 건강한 교회 연합과 협력을 고민해야 한다. 교단 간 차이를 인정하되, 신앙의 본질을 공유하며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한국 개신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