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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 찾기》— 의심은 믿음의 반대인가, 더 깊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문인가


    "나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이미지를 떠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멈칫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한 번쯤 이런 순간이 옵니다. 열심히 믿어왔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믿어온 것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하나님에 대한 내 관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순간. 그 질문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믿음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입니다.

    레이철 헬드 에번스의 《신앙 찾기》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이 책, 딱 세 줄

    레이철 헬드 에번스는 미국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라 신학적 의심과 씨름하다 성공회로 신앙의 자리를 옮긴 작가이자 신학자입니다.

    이 책은 그 여정을 회고록 형식으로 솔직하게 담은 책입니다.

    의심을 억누르지 않고, 그 의심을 끝까지 들고 걸어간 한 사람의 신앙 이야기입니다.


    이 저자를 먼저 알고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먼저 저자가 누구인지를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레이철 헬드 에번스는 한국 보수 복음주의 교회의 시각으로 보면 불편한 인물입니다. 여성 안수, 성소수자 포용 등 한국 주류 교회와 정면으로 다른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녀는 2019년 37세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신학적 입장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숨기고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한 신학자의 모든 결론에 동의하지 않아도, 그가 던지는 질문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에번스가 복음주의 신앙의 틀 안에서 씨름한 질문들, 즉 의심과 공동체, 성례와 은혜, 신앙의 해체와 재건에 관한 질문들은 그녀가 어떤 답에 도달했는가와 무관하게,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의심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다 — 그러나 의심에서 멈추는 것도 신앙은 아니다

    에번스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이것입니다. 의심은 믿음의 실패가 아니라, 더 깊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문일 수 있다는 것.

    이 말은 성경 안에서 충분히 지지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내 나이가 백 세인데 어떻게 아들을 낳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예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도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들을 불신앙의 사례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질문들과 정면으로 대화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말해야 합니다. 의심 자체가 신앙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질문은 결국 순종으로 이어졌고, 도마의 의심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가장 강렬한 고백으로 끝났습니다. 에번스 역시 이 점을 이야기합니다. 의심은 여정의 한 단계이지, 여정의 종착지가 아니라는 것을.

    의심을 품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의심 안에 눌러앉는 것과 의심을 들고 하나님께로 걸어가는 것은 다릅니다.


    성례 — 완벽한 사람의 상이 아니라 은혜의 식탁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성례에 관한 통찰입니다.

    에번스는 세례와 성찬을 완벽한 신앙인의 자격증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 입고 흔들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리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식사하신 사람들은 흠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세리와 죄인, 병든 사람, 의심하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성찬의 식탁은 이미 완성된 사람들의 자리가 아니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의 자리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에번스에게 동의합니다. 한국교회가 성례를 지나치게 조건화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들

    사역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신학적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요?" "기도했는데 왜 아무 응답이 없을까요?" "믿었는데 왜 이렇게 아플까요?"

    저는 그 질문들 앞에서 정답을 드린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정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에번스의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신앙은 모든 질문에 즉시 답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질문을 품은 채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걸어감이 가능하려면, 질문하는 사람 곁에 함께 앉아주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한국교회가 가나안 성도들에게 빚진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자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빛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의심을 죄책감의 영역에서 꺼내 신앙의 여정 안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점입니다.

    질문하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고, 그 질문을 통해 더 깊은 신앙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회고록 형식이기 때문에 설교가 아닌 한 사람의 진짜 이야기로 읽히고, 그 진솔함이 독자의 마음에 가닿습니다.


    이 책의 그늘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에번스의 신학적 여정은 보수 복음주의의 틀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독자가 이 책에서 의심의 가치만을 취하고 저자가 도달한 신학적 결론까지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하는 용기는 배우되, 그 질문이 향해야 할 방향은 각자가 성경과 씨름하며 찾아야 합니다.

    또한 이 책은 개인의 신앙 여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신앙 공동체의 불가피성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얕습니다. 에번스 자신은 결국 공동체(성공회)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의미 있습니다. 의심의 여정은 혼자 걷는 길이지만, 그 끝에는 다시 공동체가 있습니다.


    이 책 이후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이 책을 읽었다면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의 《교회 밖에서 하나님 만나기》를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에번스가 "의심 속에서 신앙을 다시 찾는 내면의 여정"을 이야기한다면, 테일러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하는 영성의 실천"을 보여줍니다. 두 책은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신앙은 완성된 답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여정 안에 있다는 것.


    글을 마치며

    지금 질문이 너무 많아서 신앙이 흔들린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잠깐,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질문이 많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무관심한 사람은 질문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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