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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편 62편 묵상
본문 말씀
시편 62편 —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복음 중심 성경 묵상
"잠잠히" — 이 단어를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1절과 5절, 이 시는 거의 똑같은 문장으로 두 번 시작합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1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5절). 그런데 자세히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 1절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진술이고, 5절은 자신에게 다시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편의 정직한 지점입니다. 다윗은 이미 잠잠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가, 곧이어 스스로에게 다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한 번 결심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잠잠함은 매번 다시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잠잠히"일까요
3-4절을 보면 다윗은 지금 조용한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무너뜨리려 일제히 공격하고 있고, 겉으로는 축복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저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잠히"라는 단어는 수동적인 체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소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내면을 소란스럽게 만들지 않겠다는 결단. 우리는 위기 앞에서 본능적으로 마음속으로 시끄러워집니다. 온갖 계산과 걱정과 방어 논리가 머릿속을 채웁니다. 다윗의 "잠잠히"는 그 내적 소란을 향해, 그만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라고 말을 거는 것입니다.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그런데 이 표현도 두 번 나오면서 미묘하게 바뀝니다
2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6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크게"라는 단어가 빠졌습니다. 이 미세한 차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저는 이렇게 읽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적어도 크게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정도의 다짐이었다가, 잠잠히 하나님을 다시 바라본 뒤에는 아예 흔들리지 않겠다는 더 확고한 고백으로 나아간 것 아닐까요. 반복 속에서 믿음이 더 단단해지는 과정을 이 시가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입김이며" — 냉정하지만 필요한 말입니다
9절,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이것은 인간 혐오가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의 위협이 실제로는 얼마나 가벼운지를 하나님의 저울에 비추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들, 우리를 흔드는 사람의 말과 힘이, 영원한 관점에서는 입김처럼 가볍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를 잠잠하게 만드는 근거가 됩니다.
8절 — 이 시편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는 것이 감정을 억누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 구절이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마음속의 것을 다 쏟아내되, 그 방향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잠잠함은 침묵이 아니라, 올바른 대상을 향한 토로입니다.
"권능은 하나님께, 인자함도 주께" — 이 균형이 중요합니다
11-12절, 다윗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요약합니다. 권능과 인자하심, 이 둘이 함께 있어야 온전한 신뢰가 가능합니다. 능력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두려운 존재일 뿐이고, 사랑만 있고 능력이 없다면 무력한 위로일 뿐입니다. 다윗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능력과 인자하심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반석은 결국 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윗이 반복해서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라고 고백한 그 대상은, 신약에 이르러 구체적인 얼굴을 얻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처럼 취급받으셨습니다. 겉으로는 호산나로 환영받으셨지만, 며칠 뒤 같은 입에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입으로는 축복, 속으로는 저주, 이것이 정확히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배신의 패턴입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에서 그리스도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다윗의 잠잠함을 완전한 순종으로 살아내셨습니다. 그리고 12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라는 심판의 원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그 갚음을 대신 받으심으로 역전됩니다. 사람의 권능은 입김처럼 가볍지만(9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은 죽음마저 이기는 반석입니다.
오늘의 적용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소란스럽다면, 다윗처럼 스스로에게 다시 말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그리고 그 잠잠함이 침묵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남김없이 하나님 앞에 토해내는 정직한 대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위협 앞에서 온갖 계산과 걱정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오늘 저의 영혼에게 다시 말합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저를 흔드는 것들이 주의 저울 앞에서는 입김보다 가볍다는 것을 믿습니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오늘 저의 마음을 남김없이 주 앞에 토해냅니다. 겟세마네에서 완전한 순종으로 잠잠하셨던 그리스도, 우리가 받아야 할 갚음을 대신 지신 그분을 바라봅니다. 권능과 인자하심이 함께 계신 주를 오늘도 흔들림 없이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묵상할 질문
- 최근 마음이 소란스러웠던 순간이 있다면, 그 소란의 정체는 무엇이었나요?
- 나는 한 번 결심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나요, 아니면 다윗처럼 반복해서 다시 결단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해왔나요?
-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는 8절의 말씀이, 감정을 억누르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오늘 어떻게 이해하게 되셨나요?
- 나를 위협하는 것들이 하나님의 저울 앞에서 "입김보다 가볍다"는 사실이, 오늘 나의 두려움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 겟세마네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완전한 순종이, 나의 "잠잠함"의 모델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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