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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빛에 비친 베들레헴 골목

    이른 새벽, 베들레헴의 좁은 골목마다 은은한 주황빛 가스등이 하나둘 켜진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의 고요 속을 걸으며 내 마음도 서서히 깨어난다. 이곳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품에서 처음 울음을 터뜨린 곳, 구유가 놓였던 그 자리. 돌담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에 숨을 들이쉬며, 오늘 내가 걷게 될 순례의 발걸음이 더욱 경건해진다.

    첫 만남: 예수 탄생 교회 입구

    교회 앞 광장에 도착하자, 이미 수십 개의 작은 양초가 “별이 임한 밤”처럼 반짝이고 있다. 수많은 언어로 읊조려지는 기도 소리와 함께, 무심하게 지나가는 현지 주민들의 발걸음까지도 거룩하게 느껴진다. 대리석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6세기 비잔틴 양식의 웅장한 기둥들과 고대 십자가 문양이 어우러져 마치 시간의 파노라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구유가 놓인 그 자리에서

    교회 내부 제단 아래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면, 바로 그 구유 자리–알라반티노 대리석으로 장식된 바닥 중앙에 은빛 별이 박혀 있다. 별의 여덟 갈래는 ‘빛의 여정’을 상징한다. 무릎을 꿇고 별 위에 손을 얹었을 때, 찬란한 빛이 내 안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이 자리에서 수천 년 전 마구간 냄새와 들짐승의 숨소리가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고대 비문이 들려주는 이야기

    구유 바로 옆 벽면에는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새겨진 라틴어·그리스어 비문이 남아 있다. “Hic de Virgine Maria Iesus Christus natus est”–“이곳에서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는 문구가 어렴풋이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빚어낸 비문의 갈라진 자국 사이로, 온 몸에 닿는 차가움이 지나간 역사의 무게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마주한 찬양

    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성가가 공간 전체를 진동시켰다. 낮고 부드러운 합창이 굳어 있던 내 마음까지 녹이는 순간이었다. 고요 속에 번지는 성가의 선율은, 이 좁은 암실이 곧 천상의 노랫소리로 가득 차오르는 통로임을 일깨워 주었다.

    빛과 그림자의 산책

    빛이 들어오는 시간이 되자, 교회의 높은 창문 너머로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파편처럼 쏟아진다. 벽면의 이콘과 십자가가 그 빛에 일렁이며 시간의 경계를 허문다. 미로 같은 골목을 빠져나온 뒤에도 나는 여운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눈앞에 비친 돌담과 골동품 상점 벽화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에메랄드빛 하늘과 구유의 기억이 한데 어우러져, 내 안에 새로운 빛이 깃드는 듯했다.

    여행 체험 팁

    1. 방문 시간: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방. 일찍 가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한적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2. 입장료: 무료이나, 유지·보수 기부함이 있으니 소정의 헌금을 준비할 것.
    3. 복장: 구유 주변은 바닥이 차가우니 긴 바지·양말 착용 권장. 신발 벗고 들어갈 구역도 있어 편한 신발을 추천한다.
    4. 가이드: 현지 한국어 가이드 투어(약 1시간·유료)를 신청하면 비문 해설, 순례 전통 등을 깊이 있게 들을 수 있다.

    여운을 간직하며

    베들레헴 예수 탄생 교회는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다. 구유 앞에 놓인 돌 하나, 비문 한 줄기마다 수많은 신앙의 숨결이 배어 있다.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다가갔다가, 순례자의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 그 길 위에서 당신도 이곳이 지닌 수천 년의 기적을 맞이하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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