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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표현이실 겁니다. 진짜 그렇다면, 교회가 성도님을 구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죄송하지만,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시라면, 생활의 규모에 대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시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어찌되었던 말이 나왔으니 십일조에 대해서 제대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보고자 합니다.
십일조는 흔히 우리가 소득이나 재산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는 십일조를 강조하고, 성도들은 이를 신앙의 의무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십일조가 실제로 어떻게 등장하고 있으며, 그 정신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십일조, 성경이 말하는 진짜 의미는?
성경에서 십일조는 단순히 재물을 바치는 행위가 아니라, 신앙 고백과 공동체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중요한 신앙적 표현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십일조의 개념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입니다. 창세기 14장 20절에서는 아브라함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살렘 왕이자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을 만나고,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바친 이유는 단순한 헌금이 아니라, 전쟁의 승리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즉, 십일조는 하나님이 자신의 삶과 재산의 주인이시라는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사례는 창세기 28장 22절에서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도망치는 길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면 자신도 하나님을 따르고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이는 십일조가 단순히 의무적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과 신앙의 표현으로 드려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즉, 십일조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감사의 고백이자 신앙의 서약이었습니다.
이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십일조의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재산의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에서 일부를 구별하여 드림으로써 전부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에서 행하는 십일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중요한 것은 단순히 10%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정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십일조에 대한 직접적인 명령보다는, 더 중요한 영적 가치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강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바리새인들이 박하, 근채, 회향 등의 십일조를 철저히 지키면서도 정의와 자비, 신의를 저버린 것을 비판하셨습니다. 이는 십일조가 형식적으로만 지켜져서는 안 되며, 그 안에 담긴 신앙의 정신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자, 하나님이 내 삶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가운데 일부를 구별하여 드림으로써 그분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십일조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십일조가 단순히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사용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정신을 오늘날에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숫자적 의무를 넘어,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신앙의 표현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십일조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십일조의 목적은 단순히 교회의 운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를 받는 교회와 공동체도 그 사용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십일조의 본질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기쁨과 감사로 드리는 것이 성경적 십일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헌신을 위한 십일조
민수기 18장 21~29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땅을 소유하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었기에, 십일조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는 오늘날로 보면, 하나님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오늘날의 개신교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전에서 봉사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헌신하는 삶을 살았으며, 이들은 땅을 소유할 권리가 없었습니다(민수기 18:2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지파가 드리는 십일조를 유업으로 주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즉, 십일조는 단순히 신앙의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한 이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는 구약의 제사장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첫째, 신약 시대에는 모든 신자가 ‘왕 같은 제사장’(베드로전서 2:9)으로 불리며, 특정한 계층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으로 인해 더 이상 동물 제사나 성전 제사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따라서 이를 전담하던 구약의 제사장직은 사라졌습니다. 셋째, 신약 성경에서 목회자는 교회를 돌보고 성도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지만, 구약의 레위 지파처럼 반드시 십일조로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십일조는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까요? 단순히 목회자의 생활비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구현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사역을 돕고, 도움이 필요한 성도와 이웃을 섬기며, 복음 전파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쓰여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십일조를 특정한 성직자의 몫으로 고정하지 않고,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데 적극 활용했습니다(사도행전 2:35).
따라서 오늘날 십일조를 드리는 성도들은 단순히 ‘헌금’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십일조를 받은 후 이를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용하여, 교회의 운영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돕고 복음을 전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십일조가 단순한 의무감에서 비롯된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축제를 위한 십일조
신명기 14장 22~27절에서는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십일조를 바친 후 사람들이 그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즉, 십일조는 단순히 헌금의 의미를 넘어서, 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축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십일조의 사용 방식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단순히 예배 중 헌금함에 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서 온 가족과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고,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나눔’입니다. 신명기 14장 27절에서 하나님은 특별히 유산이 없는 레위인들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십일조를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십일조의 축제는 단순한 개인적인 기쁨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십일조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십일조가 단순히 교회의 유지비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공동체적 사랑을 실천하는 기회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감사절이나 공동체 식사를 마련하여 성도들이 함께 나누고 교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러한 정신을 구현하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우리가 받은 복을 나누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함께 즐기고, 믿음의 공동체가 더욱 강해지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십일조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단순한 의무로서의 헌금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십일조를 바라보는 것이 성경적 원리에 더욱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돌봄을 위한 십일조
신명기 14장 28~29절에서는 특별한 십일조 제도를 소개합니다. 이 십일조는 매년 드리는 것이 아니라, 3년마다 한 번씩 거둬 성 안에 저장해 두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역할을 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약자로 언급된 대상은 레위인, 고아, 과부, 그리고 이방인(오늘날로 보면 난민과 경제적 약자)입니다.
이 십일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단순히 제사나 예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누구도 굶주리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단순히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십일조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십일조를 강조할 때, 그것이 단순히 교회의 유지비나 성직자의 생활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실질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십일조는 헌금의 한 형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공동체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현대 교회에서 이 십일조의 정신을 실천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십일조 기금의 일부를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하거나, 장학금, 구호활동, 무료 급식, 의료 지원 등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 성경적 십일조의 원리에 부합할 것입니다.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이 십일조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 그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돌봄과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결국, 돌봄을 위한 십일조의 핵심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가 재물을 바치는 것보다, 그 재물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십일조의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일조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근채와 회향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십일조의 형식은 철저하게 지켰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는 잊어버렸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박하, 근채, 회향과 같은 작은 채소의 십일조까지 세세하게 바치면서도, 하나님의 뜻인 정의, 자비, 신의를 저버렸습니다. 이는 십일조가 단순한 종교적 의무를 넘어,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하나님의 가치들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정의’(justice)는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시며, 억눌린 자들을 돌보시고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의 편에 서시는 분이십니다(시편 146:7-9).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철저하게 내면서도, 가난한 자들과 억눌린 자들을 돕는 정의로운 행동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자비’(mercy)는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요소로서, 인간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셨으며,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마태복음 5:7).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작은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도, 정작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용서하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신의’(faithfulness)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진실하게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를 통해 경건한 척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 자체를 부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 되어서는 안 되며, 더욱 중요한 가치인 정의, 자비, 신의를 실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많은 교회에서 십일조를 강조하지만, 정작 교회가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고, 약자를 돕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데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도 십일조를 단순한 의무로 생각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십일조가 교회의 유지비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복음을 전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데 사용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일조의 참된 의미가 실현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도 십일조를 해야 할까요?
먹고 살기도 힘든데 십일조를 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을 원하십니다. 십일조의 본래 목적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생존이 어려운 사람에게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2장 41-44절에서 가난한 과부가 성전 헌금함에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린 장면을 보시고, 그녀가 부유한 사람들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헌신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이 무조건 전 재산을 드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신앙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씀도 자주 인용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당시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착복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으며, 그 결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단순한 금전적 헌납이 아니라, 정의롭고 공평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성경의 정신에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돌보시는 분이며,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마태복음 6:31-33).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우리의 삶을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와 공동체는 이러한 성경적 원칙을 따르며, 오히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제공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를 강조할 때, 그것이 가난한 성도들에게 부담이 되는 방식으로 작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대로라면, 십일조를 통해 가난한 자들을 돕고, 공동체가 서로를 돌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부유한 자들에게만 주어진 의무가 아니라, 공동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십일조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신앙의 한 형태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강요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한 금전적 헌납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입니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하며, 교회 공동체는 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십일조는 단순한 헌금의 개념을 넘어, 헌신, 축제, 돌봄이라는 중요한 신앙적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님께 바치는 물질적 공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실천이 되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신앙인의 의무처럼 강요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어떻게 선하게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십일조는 의무적으로 무조건 드려야 하는 부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습니다. 따라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십일조를 반드시 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돈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헌신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형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성경적 십일조의 본질입니다.
또한, 십일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를 살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구약에서 십일조는 단순히 성전 유지나 제사장들의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돕고, 공동체가 함께 축제를 즐기며, 하나님 앞에서 기쁨을 누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십일조를 관리하는 방식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십일조가 단순히 교회의 운영비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성도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될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십일조의 본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십일조의 핵심은 단순한 금전적 헌납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신앙이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어야 하며, 강제적인 부담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기쁨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의 일부를 드릴 때,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될 수 있도록 지혜롭게 쓰여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십일조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귀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