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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부임은 한 교회의 새 역사가 열리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목회자 개인의 비전이나 열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목회자가 홀로 이끌어가는 곳이 아니라, 이미 세워진 신앙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 함께 만들어가는 신앙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목회자가 교회에 부임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 그리고 교회를 섬기는 지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 1. 자신의 철학보다 교회 적응이 먼저
세상의 지도자들은 자리에 오르면 대대적인 개혁을 일삼곤 합니다. 대통령은 장관과 참모를 교체하고, 기업의 CEO는 전략과 문화를 새롭게 바꿉니다. 하지만 교회는 다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공동체입니다. 목회자가 교회를 맡았다고 해서 장로, 권사, 집사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섬겨온 분들이며, 월급이 아닌 헌신으로 교회를 지켜온 분들입니다.
따라서 목회자가 부임했을 때 첫 번째 할 일은 자신의 목회 철학을 강권적으로 펼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라는 공동체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역사해 온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무엇보다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목회 철학은 교회가 나를 신뢰하고 공감할 때에 비로소 힘을 발휘합니다. 그 시기는 빠르면 1~2년, 보통 3년은 지나야 찾아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것보다 교회가 누구인지를 배우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 2. 사람을 보는 눈, 관계의 지혜
부임 초기에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의 서열과 관계망을 세심히 파악해야 합니다.
누가 교회에서 오래 헌신해왔는지, 누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 주도성이 공동체의 공감을 얻는 것인지, 아니면 독단적인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위계질서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목회자가 부임해서 돈 많고 영향력 있는 사람만 챙긴다면 오래된 충성스러운 장로나 집사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목회자는 그 공동체의 역사를 알고, 보이지 않는 질서를 존중하며 사람들을 품어야 합니다.
또한 교회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도적인 사람, 과묵한 충성자, 아부형, 과잉충성형, 심지어 교회를 어렵게 했던 가롯 유다형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지혜는 이들을 고치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품는 데 있습니다. 목회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직업이 아니라, 끝까지 끌고 가는 사명이라는 말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 3. 교회의 문화와 지역성을 존중하라
교회마다,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통하던 방식이 지방에서 통하지 않고, 대도시 교회에서 성공했던 전략이 작은 시골 교회에서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지어 한 교회 안에서도 가정마다 신앙의 문화는 다릅니다.
목회자는 선교사와 같은 마음으로 그곳에 적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귀뚜라미 요리를 내어놓는 태국에서 선교사가 그것을 거부하면, 선교는 벽에 부딪힙니다.
목회자의 세심함은 이런 데서 드러납니다. 자신의 생일, 가족 행사를 교회에 부담 주지 않고 넘어가는 소박함, 지역 교인들의 경제 수준과 문화적 감각을 고려하는 배려심, 이런 소소한 부분에서 목회자의 품격과 존경이 쌓입니다.
🌿 4. 공동체의 핵심 인물, ‘관록자’를 품어라
어느 교회든 실질적 권력을 가진 ‘관록자’가 존재합니다. 전임 목회자들을 내보내기도 하고, 교인들 모두가 눈치를 보는 그 사람 말입니다. 목회자가 그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교회는 곧 전쟁터가 됩니다. 목회자는 그 사람을 내 편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존중하고, 인정하고, 그의 의견을 귀 기울이며 관계를 다지면 그는 목회자의 든든한 동역자가 됩니다. 이 과정은 때로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자존심을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목회자의 사명은 교회를 전쟁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입니다.
🌿 5. 사례비와 인정, 인간의 본성 이해하기
현실적인 부분도 놓쳐선 안 됩니다. 교회는 목회자에게 사례비를 주고, 목회자는 그 사례비로 생계를 이어갑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해가 바뀌어도 사례비를 동결하거나 깎는다면 목회의 의욕은 자연히 꺾입니다. 반대로 교인들은 사례비 대신 목회자의 인정과 관심을 먹고 삽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인정과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지혜롭게, 공평하게, 티 나지 않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인정은 교인들에게 봉사의 즐거움을 주고, 신앙생활의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 6. 목회자의 본질, 종으로 섬기기
오늘날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더 이상 구약의 제사장적 권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것처럼, 목회자는 종의 자세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교인들은 위선적인 권위에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겸손히 낮아진 종의 모습을 통해서만 목회자는 존경을 얻게 됩니다. “높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 목회자들에게 가장 강력한 리더십 원칙입니다.
🌿 7. 선장으로서의 지혜
교회를 배, 성도를 바닷물, 목회자를 선장이라 한다면, 목회자는 물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 선장은 뛰어난 항해술로 목적지를 향해 배를 이끌고, 기상과 해도를 살피며, 무엇보다 적절한 멘토와 조언자를 곁에 두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당회원들의 얼굴 기상부터 파악하는 민감함과, 주님의 뜻을 따르는 담대함을 동시에 가져야 합니다.
🌿 마무리하며: 목회자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사람
목회자는 무엇보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상처를 남기지 않고, 분열을 만들지 않고, 파벌을 형성하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를 건강히 세워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존심과 명예욕, 권위욕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성도들을 섬기며, 웃고 울고 함께 걸어가는 그 길, 그것이 목회자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 오늘도 주님 안에서 지혜롭게, 겸손히, 그리고 기쁨으로 교회를 품어가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 때,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경하게 되고, 교회는 부흥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