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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에서 하나님 만나기》가 성육신 신학으로 던지는 질문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교회를 떠난 것입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목회자로서 그 말은 일종의 합리화처럼 들렸습니다. 교회 없이 신앙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에 저는 쉽게 "아니오"라고 답하는 쪽이었습니다.
그러나 병원 채플에서 수년을 보내며 그 확신이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 있던 사람이 병상에서 조용히 기도할 때, 그 눈물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저는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의 《교회 밖에서 하나님 만나기》는 그 흔들림에 신학적 언어를 얹어준 책입니다.
이 책, 딱 세 줄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는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자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 중 한 사람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위로의 책이 아닙니다. 신앙의 장소성, 즉 "어디서 하나님을 만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다루는 신학 에세이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당 안에만 계시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그는 성경과 신학의 언어로 정면으로 답합니다.
성육신 신학 — 이 책의 뿌리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저자의 신학적 뿌리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테일러의 사유는 성육신 신학(Incarnational Theology) 위에 서 있습니다. 성육신이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몸을 입고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다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테일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몸을 입고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면, 그 세상 전체가 이미 하나님의 임재 장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오래된 통찰입니다. 켈트 영성 전통에서는 이를 "얇은 장소(Thin Places)"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경계가 유난히 얇아지는 장소들, 즉 신성과 일상이 맞닿는 순간들. 켈트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예배당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과 바다, 일터와 식탁 위에도 있다고 믿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처음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보다 세상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예배당은 하나님을 가두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 전체에 퍼져 있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억하게 하는 장소입니다. 이 순서가 뒤집힐 때, 신앙은 장소의 종교가 됩니다.

예수님은 회당보다 길 위에 더 오래 계셨다
테일러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연습들(Practices)"은 언뜻 평범해 보입니다.
걷는 연습, 길을 잃는 연습, 낯선 사람을 환대하는 연습, 일하는 연습, 축복하는 연습. 특별한 종교 행위가 없습니다. 화려한 예배 순서도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다시 읽어보면 예수님의 사역도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가르치셨지만, 갈릴리 호숫가에서 어부들을 부르셨고, 세리의 집에서 밥을 드셨으며,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셨고, 죽은 친구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삶의 한가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테일러가 말하는 "일상의 영성"은 신앙을 종교 행위로 축소하는 것에 대한 저항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시간에만 등장하셨다가 예배가 끝나면 사라지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동과 식사, 상실과 기쁨, 질문과 침묵 안에 이미 계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필요 없는가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일상 안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면, 교회는 왜 필요한가?
테일러 자신도 이 책에서 교회를 해체하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공동체적 신앙의 소중함을 인정합니다. 다만 그가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교회를 절대화할 때 생기는 왜곡입니다. 교회 출석을 신앙의 전부로 여길 때, 예배당 밖의 삶은 거룩함과 무관한 영역이 되어버립니다.
신약성경은 이 둘을 대립시키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10:25)라고 말하는 동시에,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라고 말합니다. 공동체와 일상, 이 둘은 신앙의 두 축입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전자만을 강조하면서 후자를 종속시켰다는 데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신성하고 월요일의 삶은 그저 버텨야 할 세속으로 여기는 이원론. 테일러는 바로 이 이원론에 도전합니다.

병원에서 목격한 것
병원 채플에서 저는 오래 교회를 떠나 있던 분들이 병상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도 언어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는 방법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오래 안 갔지만, 새벽에 혼자 기도하는 것은 계속했습니다."
그 말 앞에서 저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 분의 신앙은 유효한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하나님은 그 새벽 기도를 들으셨는가, 아닌가를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테일러는 이 질문에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답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제도적 승인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이 책의 빛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신앙의 영역을 예배당 너머로 확장시킨다는 점입니다.
일상을 거룩하게 보는 시선, 평범한 순간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훈련, 제도적 종교에 지친 사람들에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언어. 이 책은 신앙의 문을 닫은 사람이 아니라 신앙의 문이 너무 좁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씌어진 책입니다.
무엇보다 테일러의 문장은 정직합니다. 쉬운 위로를 주지 않습니다. 불편한 질문을 함께 들고 걸어갑니다.
이 책의 그늘
다만 이 책의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개인의 영성을 풍성하게 다루는 반면, 성경이 말하는 신앙 공동체의 불가피성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상대적으로 얕습니다.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명제는 진실이지만, 그것이 "교회 없이도 신앙이 완결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이 책은 교회 이탈을 정당화하는 책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테일러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책은 교회를 대체하는 책이 아니라, 교회가 잊어버린 신앙의 차원을 되살리는 책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 책 이후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이 책과 함께 양희송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을 읽기를 권합니다.
테일러가 "어디서 하나님을 만나는가"라는 신학적 질문을 다룬다면, 양희송은 "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는가"라는 현실적 질문을 붙잡습니다. 신학적 언어와 현실적 진단, 이 두 책을 함께 읽으면 개인의 영성과 공동체의 문제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깁니다.
글을 마치며
하나님이 예배당 안에만 계신다고 믿었을 때,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 밖에 서 있는 당신은, 어쩌면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항상 계셨던 자리를 처음으로 알아채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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