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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


    "저는 하나님은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못 믿겠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이 말을 의외로 자주 듣습니다.

    병원에서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을 만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믿는데 교회는 상처가 많았습니다."

    언젠가부터 한국교회에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습니다.

    가나안 성도.

    '안 나가'를 거꾸로 읽으면 '가나안'이 됩니다. 교회는 떠났지만 신앙은 버리지 않은 사람들.

    이들은 과연 믿음을 잃은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하나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일까요?


    이 책, 딱 두 줄

    이 책은 단순히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왜 이 사람들을 만들어냈는지를 묻는, 애정 어린 진단서입니다.


    교회를 떠난다는 것, 그 의미를 다시 묻다

    양희송은 책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를 떠났다는 것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뜻인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교회 출석과 신앙을 거의 동일시해 왔습니다. 주일 예배 참석 여부가 신앙의 척도가 되었고, 교회를 떠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등지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등식에 정면으로 질문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질문이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오래된 신학적 긴장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역사 안에는 오래전부터 "보이는 교회"(ecclesia visibilis)와 "보이지 않는 교회"(ecclesia invisibilis) 사이의 긴장이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이미 이 둘을 구분했습니다. 제도적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은 아니며, 제도 밖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과 단절된 것도 아니라는 통찰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도 비슷한 맥락에서 싸웠습니다. 그가 싸운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독점하려는 제도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가나안 성도는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제도와 복음 사이의 오래된 긴장을 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한국 교회가 만들어낸 특수한 상처

    그렇다고 이 문제를 신학적 개념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부정직합니다.

    가나안 성도 현상에는 한국 특유의 맥락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 성장의 이면에는 유교적 위계 구조가 교회 안으로 그대로 이식된 문화, 담임 목사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위, 그리고 숫자와 성과로 신앙을 측정하는 성장주의가 뿌리내렸습니다.

    이 구조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교회를 미워해서 떠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오히려 그들을 더 깊은 갈등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저자가 책에서 꺼내는 가장 날카로운 통찰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을 버리기 위해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떠난다.

    이 문장 앞에서 저는 오래 멈췄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떠난다. 이것이 역설처럼 들린다면, 우리가 교회와 복음을 너무 오랫동안 같은 것으로 착각해 온 것은 아닐까요?


    목회자의 시선으로 본 이 책 — 그래도 교회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저자와 조금 다른 질문을 함께 들고 싶습니다.

    가나안 성도 현상은 제도 교회의 실패만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교회를 단순한 모임이나 조직으로 보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1장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부릅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교회는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가 자신과 연결하기로 선택하신 공동체라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교회가 처음부터 완전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음행으로 얼룩졌고,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주의에 빠졌으며, 요한계시록의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었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상처 입은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버려져야 할 공동체가 아니라, 복음으로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할 공동체입니다.

    이 점에서 저는 가나안 성도를 향해 "빨리 교회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 없는 신앙도 괜찮다"고 쉽게 말하는 것도 망설여집니다.

    이 긴장을 지금 당장 해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 긴장 속에 오래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만난 한 사람

    병원 채플에서 만난 한 환자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교회는 안 나간 지 오래됐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사람은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가나안 성도는 믿음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그 두려움은 어쩌면, 신앙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빛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가나안 성도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을 '믿음이 약한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고, 한국교회가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로 소개합니다. 다양한 인터뷰와 조사 자료를 통해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현상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줍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교회를 떠난 사람을 향해 돌아서지 않습니다. 끝까지 그들 편에서 질문합니다.


    이 책의 그늘

    다만 책은 제도 교회의 한계를 예리하게 분석하는 데 비해,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본질과 회복의 방향은 상대적으로 얕게 다룹니다.

    진단은 날카롭지만, 처방은 다소 열려 있습니다.

    이 점에서 독자는 이 책을 교회 포기의 선언으로 읽기보다, 교회 회복을 위한 출발점의 질문으로 읽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이 책 이후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이 책을 읽었다면 다음으로 디트리히 본회퍼의 《제자도》를 권합니다.

    양희송이 "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가"를 묻는다면, 본회퍼는 "교회는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를 복음의 언어로 정면으로 말합니다. 특히 그의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 개념은, 한국교회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왜 떠났는가'와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를 함께 붙잡을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당신이 교회를 떠나던 그날, 당신 안에서 끝내 떠나지 않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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