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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던지는 한국교회의 가장 아픈 질문
"저는 교회를 떠난 것이지,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닙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이 말을 생각보다 자주 듣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자기합리화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말 안에 얼마나 깊은 상처와 갈망이 함께 담겨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정말 믿음을 버린 것일까요? 아니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자리에서 일어선 것일까요?
고직순의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붙잡습니다.
이 책, 딱 세 줄
고직순은 오랫동안 한국교회의 현장을 연구해온 목회자이자 저술가입니다.
이 책은 교회 이탈 현상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책이 아닙니다.
"왜 이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는가"를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자리에서 묻는 책입니다.
우리는 왜 교회를 떠나는가 — 그 진짜 이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흔한 해석은 이렇습니다. 신앙이 약해서, 세상이 좋아서, 게을러서.
그러나 저자는 이 단순한 설명을 거부합니다.
실제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훨씬 복잡하고 아픈 결들이 있습니다. 목회자의 권위주의 아래서 인격이 짓눌린 경험, 공동체 안에서 겪은 배제와 차별, 끊임없는 헌신 요구 속에 영혼이 메말라 버린 소진. 이런 이유들은 "믿음이 약해서"라는 말로 묻어버리기에는 너무 구체적이고 너무 실제적입니다.
이 책이 던지는 가장 아픈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를 떠난 사람보다, 더 먼저 복음을 떠난 것은 교회가 아니었을까?
이 물음은 고발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할 거울입니다.
사람들은 설교 때문에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과 전혀 다른 설교 때문에 떠납니다.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내건 사람들 때문에 떠납니다. 이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한, 한국교회는 같은 상처를 반복해서 만들어낼 것입니다.

성경 안의 상처 입은 사람들
흥미롭게도, 성경은 하나님께 실망하고 항변한 사람들을 숨기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침묵에 정면으로 항변했고, 예레미야는 자신의 사명 자체를 저주하는 말을 입에 담았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 앞에서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인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솔직했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항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씨름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를 떠나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 성경의 계보 위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믿음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씨름하는 사람으로.
한국교회가 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빨리 돌아오라는 촉구가 아닙니다. 그 씨름을 함께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완성된 공동체가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상처 입은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음행으로 얼룩졌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율법주의에 빠졌고, 빌립보 교회 안에서도 지도자들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가운데 칭찬만 받은 교회는 단 두 곳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교회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편지들, 요한의 편지들은 모두 이 불완전한 공동체를 향해 쓰인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교회를 통해서가 아니라, 약하고 상처 입은 공동체를 통해 일하시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교회는 비로소 위험해집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공동체만이 타인의 상처를 안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한 사람
병원 채플에서 만난 한 환자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좋은데 사람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말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교회로 돌아오셔야죠"라는 말은 그 자리에서 너무 가벼웠습니다. 그분이 경험한 상처의 무게를, 저는 단 한 마디로 덮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교회 때문에 깊이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그 상처는 실제이고,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저는 동시에 이것도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상처 안에서도, 사람을 다시 부르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 부르심은 "교회로 돌아오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오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의 빛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정직함입니다.
교회 이탈 현상을 개인의 신앙 문제로 환원하지 않고, 구조적이고 목회적인 문제로 솔직하게 직시합니다. 실제 사례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현실감이 살아있고, 교회를 떠난 사람을 정죄하는 시선이 없습니다. 목회자에게는 매우 불편하지만, 그렇기에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이 책의 그늘
다만 이 책은 진단의 언어에 훨씬 강합니다.
"왜 떠나는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만,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방향은 상대적으로 얕습니다. 독자에 따라서는 이 책이 교회를 포기해도 된다는 선언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교회를 떠나도 된다고 말하는 책이 아닙니다. 교회가 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이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이 책의 진의가 보입니다.

이 책 이후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이 책을 읽었다면 양희송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을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고직순이 "왜 사람들이 떠나는가"를 개인의 경험과 현장의 언어로 보여준다면, 양희송은 그 현상이 한국교회 전체의 구조적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더 넓은 시각으로 분석합니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면, 개인의 상처와 구조적 문제를 동시에 붙잡는 시야가 생깁니다.
글을 마치며
우리는 교회를 떠난 사람에게 너무 쉽게 묻습니다.
"왜 교회를 떠났습니까?"
그러나 더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교회를 떠나기 전, 우리는 과연 그의 아픔을 들으려 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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