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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교파도, 교회도 아닌, 예수 자체로 돌아가는 법
다시 읽는 신앙 시리즈 ①
혹시 이런 적 있으세요
주일 예배 끝나고 나오면서 "나 뭐 하러 왔지?" 싶었던 순간.
찬양은 크고 설교는 길었는데, 주차장 나오는 순간 텅 비어버리는 그 느낌. 헌금 봉투 집어들면서 '이게 신앙인가?' 물어본 적 있으세요? 아니면 반대로 — 교회 나가기 너무 힘들어서 그냥 안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예수를 버린 건 아닌 것 같아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느낌.
나는 목회 현장에서, 그리고 병원 채플에서 그런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교회에는 지쳤지만 신앙 자체는 놓을 수 없다는 사람들. 근데 뭘 붙잡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 그분들한테 내가 자주 드리는 책이 있어요. 거창한 신학책이 아니라, 영국 문학 교수 한 명이 라디오에서 했던 강연을 엮은 얇은 책이에요.
이 책은 뭔가요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장경철·이종태 역). 1941년 2차대전 중 BBC 라디오 방송이 원본이에요. 핵심 주장은 하나입니다. "교파의 차이를 다 빼고 나면 뭐가 남는가 — 그게 기독교다." 무신론자였다가 회심한 문학 교수가 썼기 때문에, 믿는 사람한테 설교하는 책이 아니에요. 믿기 시작한 사람, 혹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책이에요.

교파가 아닌 '현관 마루'에서
루이스는 이 책에서 독특한 비유를 써요.
기독교는 하나의 큰 집이고, 가톨릭·장로교·감리교·침례교는 각각의 방이라고요. 그런데 그 방들로 들어가기 전에 '현관 마루'가 있다. 루이스가 이 책에서 하려는 일은 방 안 구경을 시켜주는 게 아니에요. 현관 마루를 보여주는 거예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교회 상처가 있는 분들, 혹은 특정 교단 문화에 질린 분들은 대개 '방' 때문에 지쳤거든요. 어느 방이 더 정통이냐, 어느 방이 성령이 있느냐, 방 안에서 어떻게 앉아야 하느냐 같은 것들. 근데 루이스는 그걸 다 빼요. 방 얘기를 안 합니다. 그냥 "일단 현관 마루에 서보세요"라고 해요.
나는 이걸 읽으면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내가 지쳤던 건 기독교가 아니라 특정 방이었구나.'
루이스는 신학적으로 자연법(natural law) 이라는 개념을 끌어와요. 쉽게 말하면, 인류 어느 문명에서든 '배신은 나쁘다', '약자를 짓밟으면 안 된다'는 감각이 공통으로 있다는 거예요. 이 보편적인 도덕 감각이 어디서 왔는가 — 루이스는 그게 하나님 쪽에서 우리 안에 심어놓은 흔적이라고 봐요.
교리 증명이 아니에요. 논증이에요. 이게 결정적으로 달라요.
나는 신앙에 지쳐 병원 채플실에 앉아 있던 한 환자 보호자를 기억해요. "하나님이 있으면 왜 이렇게 힘드냐"고 했던 분. 그분한테 교리 얘기를 할 수 없었어요. 근데 루이스가 쓴 것처럼 — '당신 안에서 이게 불공평하다고 느끼는 그 감각, 그게 어디서 왔을까요?' 라고 물으면 대화가 달라졌어요.
루이스는 또 예수에 대해 아주 유명한 말을 해요. 흔히 '루이스의 트릴레마(trilemma)'라고 불리는 논증이에요. 예수가 스스로 신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그 사람은 셋 중 하나라는 거예요 — 거짓말쟁이, 미친 사람, 아니면 진짜 그 사람이 말한 대로인 사람. "그는 위대한 도덕 교사야"라는 편한 결론은 사실 선택지에 없다는 말이에요.
이게 불편할 수도 있어요. "예수를 좋은 스승으로 존경하면 안 되나요?"라고 묻고 싶어질 수 있어요. 나도 그 불편함이 있어요. 뒤에 얘기할게요.
루이스가 이 책에서 정말 탁월한 건, 기독교 신앙을 '도덕적으로 더 나은 사람 되기'로 축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는 신앙의 목표가 도덕 개선이 아니라 변형(transformation) 이라고 봐요. 인간이 하나님과 연결되면서 다른 종류의 존재로 바뀌는 것. 그가 쓴 표현 중에 이런 게 있어요 — 장난감 병정이 진짜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 비유가 나한테는 오래 남았어요.
병원 채플 사역을 하면서,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을 많이 봤거든요. 그분들이 마지막에 붙잡는 게 뭔지 알아요? 교리가 아니에요. 교파도 아니에요. "내가 사랑받은 존재였는가"라는 질문이에요. 루이스가 말하는 변형이 거기랑 연결돼요. 신앙이 나를 '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면 —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거든요.

이 책의 빛과 그늘
빛. 교파와 교리 논쟁에 지친 사람한테 '숨 쉴 공간'을 만들어줘요. 논증이 정직하고, 감언이설이 없어요. 루이스 자신이 불신자였기 때문에 의심하는 사람의 언어로 말할 줄 알아요. 한국 교회 특유의 위계적이고 순종을 강요하는 언어가 여기엔 없어요.
그늘. 루이스의 시대는 1940년대 영국이에요. 그래서 젠더 감수성 측면에서 읽기 불편한 부분이 있어요. 특히 결혼과 성 윤리를 다루는 3부가 그래요. 또 '트릴레마' 논증은 논리적으로 강력하지만, 예수의 발언을 기록한 복음서 자체의 역사성을 전제하는 약점이 있어요. 신학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이 논증이 흔들리는 지점이 있다는 걸 솔직히 말해야 해요. 루이스가 답이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시작점으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 책 이후엔
스캇 맥나이트의 《왕의 복음》을 권해요. 루이스가 '예수가 누구인가'를 물었다면, 맥나이트는 '예수가 선포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요. 신앙의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넘어가게 해주는 책이에요.
교회에 지쳤다고 신앙이 끝난 건 아니에요. 어쩌면 제도의 껍데기 바깥에서, 현관 마루에 혼자 서 있는 지금이 — 오히려 처음으로 예수를 진짜로 만날 수 있는 자리인지도 몰라요.
당신의 의심은 적이 아니에요. 그건 아직 포기 안 했다는 신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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